청양고추 한 봉지

- 사탕 하나에 심부름 잊었을 때처럼

by 김용기

청양고추 한 봉지


- 김용기



봉지에 갇혀

나를 고누고 있었던 거다

어디가서 맞고 온 뺨

내게 앙심을 품었던 거다


4시 반

지하주차장 리모컨을 눌렀다

촉이 곤두섰다

반응이 없

새벽 5분이면 천리를 가는데

주차장을 한 바퀴 돌았지만, 헛수고

채칵채칵, 큰 일 났다

밖에 새벽기도 동행자가 셋이나 있는데

아내의 옥타브가 높아졌다


엊저녁 이발소 길에

청양고추 심부름이 생각났다

확신이고 뭐고

대형마트 주차장으로 뛰었다

얼추 1,500m는 되는 거리

밤새 승용차는 거기서 이슬을 맞고 있었다


심부름 봉지 하나 들고

달랑달랑, 그냥 돌아왔던 것

괘씸한 놈

청양고추 한 봉지

새벽부터 흘리게 한 땀에 대하여

분풀이 반드시 하리라

지각은 면했으니 조금만


이제 나이는 비밀로 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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