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후(獅子吼)
- 김용기
친할 것 같지 않던 게으름이
몸에 밴 탓입니다
올 해부터 나무늘보가 되었습니다
치근덕거리는 친구요청은
매우 성가셨습니다
왜 시계를 자주 들여다보는지
까닭을 몰랐는데
생각해 보니
그때마다 회의시간
몸이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반지는 빠지지 않았고
관절각 좁아진 것은 알겠는데
거울 속 낯선 사람 낯가림 때문에
엘리베이터 회피는 습관
그게 자신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장수말벌처럼 무서운
점령지 긴장된 시간은 지속되었고
유리한 전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벌써 몇 번을 만났는지
그도 요즘 귀찮아하는 눈치입니다
얼떨결에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딴짓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되자
갑자기 말 수를 줄여버렸습니다
"이런 고얀 놈."
눈이 흐려졌을 때는
장맛비가
유리창을 적시는 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