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불용설
- 김용기
날렵하던 사바나처럼
늘 그랬는데
나무늘보가 된 사연 묻지 않았다
세렝게티의 저녁처럼
한 끼 식사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 엄습은 변한 환경 탓
탬버린과
빠른 랩을 마이크에 댄 것은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는데
느린 가요무대 편안함을 몰랐다
새벽부터 시작한 하루가
한 달 내내 반복되었을 때
만보계는 넘쳤고
고객불만이 귀에 가득 쌓일 때
월급을 욕값으로 받던 비참함
지지직거리던 라디오가
눈치 못 챈 것은 다행이었다
무엇이던 닥닥 긁어먹는 습관이
숙달되어 간다
끊어진 월급 탓
병원비 아껴야 하는 백수의 일상도
익숙함에 접어들었을 때
먹이 때문에 우울해진
기린의 용불용설이 가시에 찔렸다
맞다, 나무늘보의
느린 것만 보았고 뛰는 가슴은
보지 못했다
세렝게티의 날 수는 점점 늘고
꽃은 시들어도
씨앗 남기는 법을 익혀가는 날마다
조선 백수의 각오가
그림자처럼 선명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