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에서 김삿갓을 만나다
- 김용기
장원급제는 조부 욕값이었다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순천부사 김익순
홍경래의 칼 아래 엎드린 것은
과하지욕(跨下之辱)였을 거라며
조부의 참수를 안위했지만
자신을 향한 분노
하늘을 볼 수 없음이었다
갓으로 가렸으나
불효한 가슴까지 가리지는 못했다
걸음 옮길 때마다
장원급제 글 귀 하나씩 털어냈다
왜 그러셨냐고 이유 묻지 않았다
풍자와
해학으로 세상을 꼬집고
웃기고 칭찬하며 다녔지만
그의 글에는 그늘이 있었다
돌고 돌아
조선팔도 안 가본 곳 없으나
후회도 속죄도
멸문의 수치를 삭일 수 없었다
휴가 중 영월에 섰더니
있으나 마나,
병연의 조강지처 황씨의 짠한 삶이
눈앞에 있었다
요즘 같으면 억울함을 감당치 못해
울고불고
급살도 몸에 붙이고 다녔으련만
제 삶 포기한 방랑시인 김삿갓과
전생이 기구한 부인 황씨가
서서 반겼다
가문의 명예가 목적이었던
그런 삶을 일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