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있는 여름
- 김용기
태풍 카눈이 월북한 이후에도
하늘은 줄곳 축축했고
비바람 잦아든 나무마다
젖은 빨래처럼
늘어진 매미 소리가 매달려 있었다
변덕스러운 여름은
혀 깨문 이처럼 원망스러웠으나
시곗바늘은 달력에서
백로(白露)를 정확히 짚어냈다
돼지밥 주고
커피 한 잔 마시는 사이
초가을 하늘은 다시 더워졌고
그늘에 있던 사람들 중 몇은
하늘에 대고 손가락질을 하였다
비무장지대 철조망을 제 맘대로 뚫고
북한으로 간 태풍 카눈에게
총 한방 못 쏘고 놓쳤던 경계병
그의 안위가 걱정되었는데
국방부는 발표문을 내지 않았다
준치가시 같은 올여름은
초가을도 독하여
반나절 서성거렸는데도
비틀어진 마른 콩 터트리듯
전두엽의 우울한 생각까지 꺼내
모두 건조시켰으나
넋 없이 앉아 있는 사람 몇은
정부가 중간에 낀 까만 글씨를
빨간색으로 바꿔 줘도
반갑지 않은 기색
긴 추석이 두려운 이들은
주머니가 허탈한 막바지 여름
올처럼 유난스러운 적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