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되다

- 투우사

by 김용기

바보가 되다


- 김용기



네 살배기 아들은 투우사다

아버지를 끌고 다녔다

뛰어가다가

발자국 소리 들리지 않는다 싶으면

슬쩍 뒤돌아 보는데

영락없이 뛰어가는 건 아버지였다

그럴수록 아버지는

아들이 영민하다고 했다


씨름, 이기다니 가당찮은 소리

할 때마다 나가떨어졌다

분(憤)하거나

적의(敵意)를 품은 적 없는

바보 아버지가 됐다


밖에서 울고 오던 날

그쪽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역성들어 달라는 신호에는

단호했다

맞고 왔으니 마음은 상했지만

상대 아이까지 울릴 수는 없었다

이상하고 억울했을 아들은

얼렁뚱땅 울음을 멈췄다


그런 아들이

엄마의 브래지어 끈이 보인다며

슬그머니 웃옷을 추켜 올려 줄 만큼

커가고 있었다


손주가 그런 나이가 됐다

할아버지가 되었고 나는 여전히

투우장의 황소처럼

이끌려 다니는 일이 일상이 됐다

태권도 주먹 한 방에 쓰러지면

승자가 된 손주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산을 울렸다


내가 아버지에게 그럴 수 없었던 것은

전쟁 후 굶주리던 시절이었다

막히는 길 위로 아이들 가족이 올라갔고

TV가 주춤거리는 추석을

비춰주었을 때 아시안 게임은

금메달 하나 더 추가했다


그렇게 한 세대의 바퀴가

느릿느릿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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