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계리 은행나무*
- 김용기
800년 동안
미동도 없이 한 자리 서 계신다
좀이 쑤시고
돌아가는 세상 궁금하기도 할 텐데
일절 꼼짝하지 않으셨다
길에서 먼 후미진 곳이다
노란 가을에는
반계리 은행나무 처진 가지마다
버팀목이 세워지는데
반계리 이장이
밤마다 은행나무 신음을 들었던 것
늙은 은행나무의 허리둘레가
궁금하여 팔을 벌린 사람들은
이장에게 쫓겨났다
개보다 못하냐고 항의할 때마다
은행잎만 떨어졌다
탄생 설화까지 알 수는 없으나
어느새 유명한 할아버지가 됐다
구경 오는 놈 중
제대로 인사하는 놈은 없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고얀 놈 소리 한 번 않는 게
장수의 비결인가 싶었다
미국 다녀온 자랑을 할까 말까
먼 손자뻘 되는 놈 놀림에
질투랄 것도 없고
마냥 서 있는 속내 드러내기도 그렇고
잘 갔다 왔냐는 물음도 없이
그냥 서 계신다.
*천연기념물 16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