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등산 오르다가
- 김용기
칼에 베인 자리
벌건 핏자국이 아파 그가 울었고
벅찬 승리
산에 깃발 곶은 장수가 통곡할 때
12월 전장(戰場)에는 눈이 쌓였다
어쩌다가 패했을까,
이겼는데
그 많던 전우들 어딜 가고
도로 그 자리, 상처뿐인가
운 이유를 묻다 돌아보고
장수(將帥)를 곡쟁이라 할 뻔하였다
이 눈은 고향 눈
저 눈도 고향의 눈
차이를 묻자 대답은 같았다
승패가 무슨 상관
문막뜰에 병졸들 그리운 고향이
내려놓은 창검 옆에 주저앉아 있는데
견훤은 어디 갔나
왕건 어디에 있나
저들에게 죄 묻지 마라
저들에게는 고향을 묻는 게 옳다
건등초적(建登草笛)이
천 년 피 비린내를 달랜다
이 동네를 내가 살고
저 산 밑에 저들이 살고
왕건이 왼 손에
오른손에 견훤을 잡은 후손인데
싸운 이유 허망하여 묻지 못했다
건등산 오르다가 흰 눈 밟는 소리에
철없이 눈물만 흘렸다.
*건등초적:건등산 피리소리
*건등산:원주 문막읍에 앉은 260m의 명산으로 후삼국시대에 견훤과 왕건이 싸운 격전지이며 왕건이 승리 후 저 산에 올랐다 하여 건등산으로 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