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서(節序)
- 김용기
어림없는 소리
찬물도 위아래가 지켜지듯
봄의 순서는 엄정했다
첫겨울 겨우 벗어나
빼꼼히 머리부터 내밀었다면
몰라서
꽃은 굽 높은 순서대로 핀다는 것을
몰라서 그랬을 거다
어려서, 조심성 없는 꽃들은
조급증 때문에 쭈뼛거리다가
밟혀 죽거나
늦추위에 얼어 죽거나
절서(節序)는 그 바닥 엄연한 관습인데
어설픈 요구는 공허했다
몸이 풀렸거나 말거나
꽃 피는 춘서(春序)
자전과 공전 안에 들어 있다
왕벚이 죽은 척
관광버스까지 춤추게 할 거리마다
거무튀튀
나무토막처럼 서 있는 것은 위선이다
서두르는 사람들 걸음이 멋쩍고
겸연쩍고
춘분 후 보름달이 뜨고
한 주 지날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물러터진 것 같아도
봄의 철칙은 절서(節序)다.
*절서(節序):계절의 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