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 김용기
외진 곳
그것도 낮엔 숨었다가
저녁나절 어슬렁어슬렁
보일 듯 말 듯 드리워진 거미줄을
그걸 흔드느라
슬쩍 와서 집적거리다가
제 맘에 안 들면 매몰차게 흔드는데
밥 먹을 때 저도
흔들면 좋을까 싶은 생각
대부분 빠져나가고 더러
끈적거리는 거미줄에 걸려
허우적거리던 바람이
끝내 줄 하나 끊고 도망가다가
되돌아와
다시 흔들며 직성을 풀고 가는 바람은
그 많은 것 놔두고 하필
눈 크게 떠야 뵈는 거미줄에게 저럴까
한참 서 있던 저녁
바람이
거미와 식성이 같을 거라는 짐작은
궁금증 많던 어린 시절이었다
앞 산 겨우 몇 남은 지금
별 걸 다 꺼내보는
나무늘보 같은 오후가 지나가도
그러려니
너무 멀리 오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