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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소묘

- 절차(節次)대로

by 김용기

오월 소묘


- 김용기



시든 장미꽃 옆에

키 큰 개망초 활짝 피었다

울타리 붙잡고 겨우 서 있는

장미 곁, 개망초가 흔들거리며 서서

저 어떻냐고 물었는데

조용했다


오월이

불안한 벽에 매달려 있다

어린이날을 월요일로 옮겨서

빨간 날을 하루 더 줬지만

비는 주말마다 내렸고

쿨럭쿨럭, 달력은 슬펐다


커피 한 잔 들고

울타리따라 걸으며 천천히 봤다

개망초 기고만장을 장미는

보고만 있었다

마치 큰 차의 경적소리처럼 긴

낫 든 경비원의 헛기침소리

알아들은 것처럼


서늘한 바람이

팔뚝에 난 털을 살살 흔들 때

공원의 긴 의자도

백수의 낮잠은 간섭하지 않았다

오후는 한가했다

깊은 하늘이 파랬을 때

흰구름 몇 점

못 거른 흰 밥풀 동동주에 떠다니듯

어기적거렸지만

그게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아는 이는 없었다


자고 나면 오월 달력은 찢어질 테고

민감한 여의도는

스스로 달라질 그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걸까

생각해 보니 목련이 왔다가 갔고

벚꽃 피고 지고

개나리와 진달래가 그랬고

아카시아 꽃이

하얀 최루탄처럼 폈다가 졌는데

꽃이 순서대로 피고 질 때

사람은 유월에 뭐가 달라질라나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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