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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랭이꽃

- 그때가 그립다

by 김용기

패랭이꽃


- 김용기



키 작은 풀숲 길

묘지가 보이는 언덕은 멀었고

그 길 넘어야

띄엄띄엄 몇 채 있는 동네에

갈 수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스산했다

늦은 하굣길 두려움을 떨치려고

멀어지지도 않고

가까워지지도 않는 걸음 폭으로

내 뒤 저만큼

뒤따라오던 그를 알고 있었다

길섶 두어 발자국 위로

분홍색 패랭이꽃 핀 늦여름

영문도 모르고 한 동안

우두커니 서 있어야 했던 그는

믿고 왔는데 왜 그럴까 그런 표정

두려웠을 텐데

갑자기 풀숲으로 들어가는 나를

따라 들어갈 수도 없고

나의 첫 설렘,

들꽃 한 다발 건넸을 때

나도 놀랬다

손에 땀이 흥건했던 그를 기억한다

한 손에 책가방도 들었으니

어쩌지도 못하고,

희미하게 오빠 소리만 들었다

가벼웠지만

그날 입맞춤은 의도된 것 아니었고

갈림길까지 오랜 시간

둘 다 어색했다

연한 콧수염 거뭇거뭇

더러 보이던 시절이었으니까

어렸다


지금 이 나이에도

패랭이꽃만 보면 미친 소처럼

걸음이 제 각각

풀내 나는 고향 꿈길을 걷는다

김병총의 다혜가 오고

머나먼 쏭바강의 빅뚜이가

뜬금없이 기억을 더듬는 요즘

그리움 한 조각 더 있다

오십 년 전 그를

허깨비로 만들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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