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엿듣다

- 사랑을 알아채다

by 김용기

엿듣다


- 김용기



울다가 웃다가,

그런 휠체어를 봤다

훤칠한 남자가 진땀을 흘렸다

웅얼웅얼

그랬대

그러니까 그게

응응

맞아, 그랬었구나

그럼 그렇지

말이라고 할 수도 없었지만

젤리같이 흐느적거리는

여자의 말 모두 알아 들었다


장마가 점령했던 여름이 가고

흰구름은

뽀송뽀송한 하늘에 머물렀다

달력을 찢은 휠체어들은

9월을 걷기 시작했고

남자를 미루어 볼 때

한 때 날렸을 여자가 분명했다

엘리베이터에 거울은 없었으나

남자는 모습을

자상하게 말해 주었다


저만큼 떨어져서 한 모금

담배연기를 허공에 흩어 보낼 때

남자의 눈은

먼 하늘에 묶여 있었고

소나기를 품은 듯 어두웠다

휠체어가 천천히

좁은 산책로를 따라 멀어질 때

뜬금없이 내게 빗방울 하나

뚝 떨어졌다

남의 얘기 엿들었으므로

통신법 위반이 맞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못생겼으므로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 맞지만

사랑은 내게 이미 전이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