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듣다
- 김용기
울다가 웃다가,
그런 휠체어를 봤다
훤칠한 남자가 진땀을 흘렸다
웅얼웅얼
그랬대
그러니까 그게
응응
맞아, 그랬었구나
그럼 그렇지
말이라고 할 수도 없었지만
젤리같이 흐느적거리는
여자의 말 모두 알아 들었다
장마가 점령했던 여름이 가고
흰구름은
뽀송뽀송한 하늘에 머물렀다
달력을 찢은 휠체어들은
9월을 걷기 시작했고
남자를 미루어 볼 때
한 때 날렸을 여자가 분명했다
엘리베이터에 거울은 없었으나
남자는 모습을
자상하게 말해 주었다
저만큼 떨어져서 한 모금
담배연기를 허공에 흩어 보낼 때
남자의 눈은
먼 하늘에 묶여 있었고
소나기를 품은 듯 어두웠다
휠체어가 천천히
좁은 산책로를 따라 멀어질 때
뜬금없이 내게 빗방울 하나
뚝 떨어졌다
남의 얘기 엿들었으므로
통신법 위반이 맞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못생겼으므로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 맞지만
사랑은 내게 이미 전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