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달

by 김용기

그믐달


- 김용기



뭐 볼 것 있겠냐며

서쪽 나지막이

별 기대감 없이 솟았는데

초승달은 잠깐 들렀다 갈 요량이었을 테고


눈이 커졌다

달의 걸음은 자꾸 느려졌고


달라진 세상에는

밤에도 나다니는 사람 많았고

가물거리던 밤은

생각 밖으로 밝아서 놀랐을까


찬 바람이 제 멋대로 돌아다녔고

비니루가 나뭇가지에서 펄럭거렸지만

구경에 문제 될 건 없었다

바뀐 세상은 신기했다

동이 트고

구름도 물러갔지만

하현달은 산마루를 벗어났을 뿐

두리번거리는 아이 같았다


해는 이미 훌쩍

그믐달을 앞서 나갔고

한 달 동안

동쪽 하늘에서 주춤거렸던 까닭

게으름이 아니라 놀람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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