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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다리는 경험, UX의 다음 챕터

by dionysos

<UX가 변해온 궤적과 새로운 질문>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는 지난 20년 동안 끊임없이 확장해 왔습니다. 초기의 UX는 주로 화면 위 요소들의 위치와 디자인에 집중했습니다. 버튼을 누르기 편한가, 글씨가 잘 보이는가, 메뉴의 동선이 단순한가 같은 질문이 UX의 전부였습니다. 당시 UX는 인터페이스(UI)와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곤 했습니다.


하지만 모바일 시대로 넘어오면서 UX는 더 이상 단순히 ‘보이는 것’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손가락 제스처, 진동 피드백, 알림음 같은 시간적·감각적 요소가 UX의 핵심으로 편입되었습니다. 사용자는 화면만 보는 게 아니라, 앱과 함께 “기다리고 반응하는 시간”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클라우드, 협업툴, 그리고 AI의 시대에 들어오면서 UX는 또 다른 질문을 맞닥뜨렸습니다.


“개인의 시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여럿이 동시에 사용하는 경험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 질문이 바로 오늘 우리가 다루려는 "Temporal UX(시간의 경험)"과 "Collective UX(집단의 경험)"입니다.



<왜 지금, 시간과 집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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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I가 만든 새로운 ‘기다림’


인터넷 서비스는 오랫동안 “빠름”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습니다. 구글 검색이 0.3초 만에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UX의 경쟁력이었던 시절이 있었죠. 그러나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기다림”이 UX 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미지 생성은 수 초에서 수 분이 걸리고, 영상 합성은 몇 분 이상 소요됩니다. 텍스트 생성도 짧게는 몇 초지만, 길게는 수십 초를 기다려야 합니다. 사용자들은 이제 기다리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고, 서비스는 그 기다림을 어떻게 경험으로 바꿀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2. 원격 협업이 만든 새로운 ‘함께’


또 하나의 변화는 원격 근무와 협업 도구의 확산입니다. 팬데믹은 사람들을 줌(Zoom) 화면 속에 가두었고, 이후 수많은 협업툴들이 등장했습니다. 중요한 건 단순히 “함께 접속했다”가 아니라 “동시에 일한다는 감각”이었습니다.


동료의 커서가 옆에서 움직이는 걸 보는 순간, 우리는 “나 혼자가 아니구나”를 실감합니다. 채팅창에 ‘타이핑 중…’ 표시가 나타나는 짧은 순간조차 집단적 동기화를 만들어 냅니다. 이렇게 집단이 함께 쓰는 시간이 곧 UX가 되었습니다.



3. 사례 제시 전 – 왜 사례가 중요한가?


Temporal UX와 Collective UX는 단순한 개념이 아닙니다. 이들은 실제 제품과 서비스 안에서 구현된 설계 원리입니다. 사례를 통해 우리는 이 개념들이 어떻게 파생되었는지, 왜 사용자에게 의미 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 Temporal UX 사례는 기다림을 낭비가 아닌 체험으로 바꾼 서비스들입니다.

✅ Collective UX 사례는 여러 사용자가 동시에 살아 있는 순간을 공유하도록 만든 서비스들입니다.

✅ 그리고 두 축을 잇는 Cross 사례는 “함께 기다리는 경험”을 만들어낸 도구들입니다.



✔️ Temporal UX – 기다림을 경험으로 만든 서비스


1) Otter.ai – 회의가 기록되는 ‘진행 중 경험’


Otter.ai는 회의를 실시간 전사하는 서비스입니다. 전통적인 녹음 앱은 ‘로딩 중’ 표시나 파일 저장 후 전사된 결과만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Otter는 문장이 작성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회의가 기록되고 있다”는 감각이 실시간으로 체험되며, 기다림이 곧 몰입의 순간으로 바뀝니다.



2) Krisp.ai – 소음을 지우는 ‘안심의 시간’


Krisp는 온라인 회의에서 배경 소음을 제거해줍니다. 필터가 적용되는 동안 단순히 멈추는 대신 파형 애니메이션이 흐릅니다. 사용자는 “내 목소리가 정리되고 있다”는 안심감을 즉시 체감합니다. 대기 시간이 오히려 신뢰를 형성하는 장치가 된 셈입니다.



3) Calm – 기다림을 힐링으로 바꾸다


명상 앱 Calm은 콘텐츠를 불러올 때 심호흡 애니메이션을 제공합니다. 로딩이 끝날 때까지 사용자는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추며 짧은 명상을 하게 됩니다. 불편한 기다림이 웰빙 경험으로 변환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 Collective UX – 집단의 시간을 동기화한 서비스


1) Spatial – 가상 공간 속 동시성


Spatial은 3D 협업 플랫폼으로, 아바타들이 동시에 같은 가상 공간에서 움직이며 오브젝트를 편집합니다. 단순히 결과물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함께 체험하는 집단 UX를 제공합니다.



2) Heptabase – 사고의 흐름을 공유하다


Heptabase는 카드 기반 비주얼 노트 도구입니다. 여러 명이 동시에 카드를 붙이고 연결하며 사고 과정을 시각화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결과물이 아니라, 생각이 동시에 전개되는 순간을 집단이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3) Butter.us – 협업의 리듬을 설계하다


Butter는 온라인 워크숍 툴입니다. 단순 화상회의를 넘어 타이머, 투표, 브레이크아웃룸이 내장되어 있어 참가자 모두가 동일한 리듬으로 움직입니다. 이 리듬이 곧 집단 UX의 본질입니다.



✔️ Cross 사례 – 함께 기다리는 경험


1) Pesto – 대기실을 경험으로


Pesto는 원격 팀 툴로, 회의가 시작되기 전 참가자들은 가상 대기실에서 아바타로 모입니다. 대기 시간이 단절이 아니라, 집단의 첫 경험이 됩니다.



2) Taskade – AI와 집단의 공존


Taskade는 AI가 워크플로를 생성하는 동안 팀원들이 동시에 수정할 수 있습니다. 기다림과 협업이 동시에 발생하며, UX는 AI와 집단의 동시성을 하나의 경험으로 녹여냅니다.



3) Tandem.chat – 상태가 만드는 리듬


Tandem.chat은 가상 오피스로, 동료가 합류하기 전에도 현재 어떤 앱을 쓰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집단의 시간 감각을 형성하는 장치입니다.



<시간과 집단이라는 UX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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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잘 설계된 대기 시간은 브랜드 경험, 심리적 안도, 몰입으로 변환될 수 있습니다.


집단 UX는 기능이 아니라 리듬입니다. 협업 도구의 핵심은 권한 분배가 아니라, 사람들이 동시에 호흡하는 리듬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간과 집단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개인의 지연은 집단 전체의 불협화음을 낳고, 집단의 동기화는 개인의 시간을 다르게 체험하게 할 수 있습니다.



<UX는 어디로 가는가?>


Invisible Waiting : 기다림은 점차 감춰지지만, 동시에 체험 가능한 심리 장치로 설계될 것입니다.


AI as a Teammate : AI는 집단 UX의 ‘참여자’로 등장할 것입니다. AI도 기다리고, 사람도 기다리며, 둘은 동시에 협업을 이뤄 나갈 것으로 예측됩니다.


Temporal-Collective Integration : 대부분의 서비스에서 개인의 대기 시간과 집단의 동시성은 동시에 설계되어야 한다. 회의, 교육, 쇼핑, 게임 모두가 그 예가 될 것이다.



⚒️ 마치며


UX는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한때는 화면 위 버튼의 위치가 UX였고, 한때는 로딩바의 색상이 UX였습니다. 이제는 시간과 집단이 UX의 새로운 전쟁터입니다.


로딩바는 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다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기다림은 이제 함께 기다리는 경험으로 변주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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