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좋은 기회라는데
'나 때는'이라는 말을 안 할 수가 없는데, 사진관에 가서 예스러운 배경에 휘황찬란한 의자에 앉아 근엄한 전신샷을 찍는 게 돌사진이 아기 사진의 전부였다. 요즘은 부모의 만삭사진부터 조리원에서 본아트(누에고치마냥 돌돌 말아 찍는 사진), 50일, 100일, 200일, 돌까지 풀코스로 콘셉트도 다양하게 해서 성장 앨범을 찍어준다.
출산 준비를 하면서 성장앨범을 하고 싶어서 어디 스튜디오를 갈 거라고 정하는 부모들도 있을까? 대게 조리원을 알아보느라 바쁠 것이다. 조리원 면회시간이나 아기 케어, 가족 방문, 금액 등을 상담하다 보면 실장님이 흘러가듯이 “어디 스튜디오랑 연계가 되어 있어서 무료로 만삭이랑 50일 사진 찍으실 수 있어요~”라는 말을 한다. 임신 후기가 다가오고 이것저것 준비하다가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오는데, 잊고 있었던 스튜디오다. 만삭 사진 촬영차 시간 조율로 연락드린다면서 어찌나 말을 잘하시던지, 홀린 듯 날짜를 잡고 촬영을 한다. 무료지만, 촬영본이나 미니앨범은 추가금을 내야 한다. 그들의 영업스킬에 넘어가 오늘만 대폭할인 성장앨범을 계약하고 나온다. 몇백만 원부터 시작하는.
사실 그 돈으로 맛있는 걸 사 먹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사진은 남기고 싶어서 100일 촬영만 예약했고 50일 촬영은 무료로 해준다고 했다.
아기가 50일이면 아직 초보맘일 때라 전날 제발 제시간에 수유하고 컨디션이 좋길 바라며 잠들었다. 도착해서 콘셉트를 고르고 옷을 갈아입히는 것까진 성공했지만, 낯선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밝은 조명에 찰칵 소리까지. 결국 아기가 계속 울어 한컷 찍다 실패하고 다시 오기로 했다. 부모 욕심 채우자고 하는 일인데 이게 맞는 건가? 아기한테 미안한 마음에 예약한 걸 후회했다.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사이 두 번째 촬영날이 왔다. 아기가 힘들어하면 그냥 그만 찍고 가자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아기가 멀쩡했다. 한 번 와봐서 그런가? 이상했지만 걱정과 다르게 너무 수월하게 찍어서 신기했다.
나중에 보정본을 받고 나니 너무 귀여웠고, 가족들에게 보내주니 다들 프사가 바뀌었다. 아기 백일 사진은 얼마나 더 귀여울까? 그런데 백일 사진 촬영은 아기가 목을 가눌 수 있을 정도가 돼야 촬영해서 사실 진정한 백일 사진은 아니다.
역시나 프로 작가님들의 현란한 아기 시선 뺏기와 순간 포착 능력으로 백일 사진도 수월하게 찍었다. 서비스로 가족사진도 찍어주신다고 하시길래 내가 거지꼴이어서 거절할까 했지만 그래도 찍었다. 미리 알려주셨으면 좀 예쁘게 하고 갔을 텐데..
두 번의 스튜디오 촬영 후 육체적 피로와 함께 로망은 사라졌고, 첫째 200일 때 소품을 대여해서 집에서 찍었다. 그 이후로 가족사진은 첫째 돌잔치 스냅, 둘째 출산하기 전 가족 만삭 셀프 촬영, 둘째 백일 가족사진, 둘째 돌 때 증명사진이 끝이었다. 둘째야 눈감아…
앞으로 아기들 상황에 맞춰 이렇게 찍기도, 저렇게 찍을 수도 있으니까 성장앨범을 덜컥 계약하기에 앞서 한 번 더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돌잔치 때 멀리서 가족들이 축하하러 오셨는데 가족사진을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셨다.
나중에 애들이 크면 그때도 성장 앨범이 있을까? 무섭게 변하는 AI시대에 사진사라는 직업이 없어졌을 수도.. 그래도 몇십 년 후가 지금보단 더 따뜻한 시대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