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 끝났다. 여름휴가철도 지나가고 이제 가을을 맞이할 차례다. 나는 직장인이 되고 첫 해에는 여름휴가를 가지 못했다. 내가 속해있던 부서는, 그 부서 특성상 2일 연속 쉬는 게 굉장히 눈치가 보이는 환경이었고 실제로 아무도 이틀이상 쉬지 못했다. 여름에 새로 부임한 팀장님은 여름휴가를 다들 왜 안 가냐고 당혹스러워하시며 물어보셨지만, 나를 포함한 팀원들은 애매한 미소만 지었을 뿐이고, 이내 팀장님도 여름휴가를 포기하셨다. 그러던 와중에 나의 짝꿍은 다른 부처로 갑작스럽게 전출 가버렸고, 그마저 하루 쉬려고 했던 나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여름휴가철이라는 로망 따위, 신규직원에게는 역시 가당찮았다.
부서를 바꾸고 나서는 여름휴가의 기회가 찾아왔다. 사실 휴가를 갈 수 없는 부서가 있다는 사실을 다행스럽게도(?) 입사 초에 알게 돼버려서, 틈만 나면 무조건 휴가를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연가 5일. 여행지는 강릉과 그 일대. 당시에는 내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가장 소중한 5일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남부지방에 살던 나는 부끄럽지만 서른 가까이 되도록 강원도에는 가 보지를 못해서 이 김에 가야겠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세종에서 강릉까지는 예상보다 꽤 멀었고 매사에 심드렁한 나에게는 강릉바다나 부산바다나 같은 동해바다였다. 그래도 지리 교과서에서나 보던 경포대도 구경하고, 양 떼 목장도 가보고 나의 기대대로 꿈만 같은 5일을 아주 알차게 보냈다. 나는 바다보다 산을 더 좋아한다는 유의미한 결과도 얻었다.
첫여름휴가를 맛보니 그 달콤함에 취해 그 이후로는 공휴일만 보면 잽싸게 어디로 갈까 생각부터 한다. 휴가지로의 도피만을 고대하며 회사에서의 나를 쥐어짜 내는 것이다. 사실 직장에 따라서는 여름휴가는커녕 하루 쉬는 것도 아직 어려운 곳이 많음을 안다. 내 첫 부서가 그랬듯이. 그리고 휴가를 떠나서도 업무에 매몰되어,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휴가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도 안다. 참 바람직하지 않다.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일에만 매달리면 남는 건 무엇일까. 남들 쉴 때 일을 했으니 업무성과는 나겠지만 소진되는 나의 영혼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휴가지에 가서도 매 시간마다 업무 지시를 하는 어떤 이를 보며 내 첫여름휴가가 떠올랐다. 오래간만에 간 휴가지에서만큼은 업무는 접어두고 꿈같은 시간을 보내시는 게 좋았을 텐데. 그에게 이번 여름휴가에서 남는 건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