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지금 세대들은 이 영화를 모르겠지만 40세 후반 이후의 분들은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를 웬만하면 알 것이다. 1985년 당시 8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던 명화였으니까.
모차르트의 생애를 영화한 것인데 모차르트와 대비되는 인물로 살리에르가 나온다.
살리에르도 모차르트가 살았던 당시에 대단한 음악가였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늘 모차르트의 재능에 밀려 좌절하고 시기하는 질투의 화신으로 나온다.
살리에르가 모차르트의 천재적인 음악에 밀려 "왜 제게는 재능은 주시지 않고 열정만 주셨습니까?"라며 절규하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사실 현실에서 살리에르와 모차르트의 사이가 아주 나빴던 것은 아니다. 살리에르가 모차르트의 아들을 가르칠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최근에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르가 같이 작곡한 악보까지 발견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영화는 극적인 재미를 위해 살리에르와 모차르트와의 관계를 아주 나쁘게 설정하였고, 이 영화로 인해 '살리에르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살다 보면 정말 각종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
난 수학을 전공했는데, 같이 수학 수업을 들었어도 어떤 친구는 정말 창의적이고 기발한 방법으로 어려운 문제를 곧잘 풀곤 했다. 어느 수준까지는 우리 같은 일반 학생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수학적 재능이 필요한 어느 시점에서는 일반학생들이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최소한 나만큼은 그렇게 느꼈다.
이런 예들은 꼭 공부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내가 몸치이기도 하겠지만, 난 죽으라고 4년 동안 노력해도 해내지 못한 것을 1년이나 2년 만에 해내는 사람이 있다.
사회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내 친구 한 명이 같은 직종에 있는데,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잘나가고 있다. 처음엔 그 친구를 질투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친구가 사회생활을 하는 것을 살펴보니 잘나가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그건 노력보다도 타고난 재능과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그 친구를 인정하고 더 잘되기를 바라고 있다.
여기까지는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정도 선에서는 상대방의 재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자신의 부족함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 것이 현명하고 잘 생활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상황이 단순한 취미생활이나 사교, 일상적인 생활에 해당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굶느냐 먹느냐의 일, 사느냐 죽느냐의 목숨이 걸린 일이라면? 생존이 걸린 일이라면?
그렇다면 미안하지만, 차원이 달라진다. 살아남고자 하는 본능은 다른 이의 재능을 인정하고 안 하고 하는 가치 판단의 선한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요즈음의 기업들은 기업의 생사를 걸고 기술을 개발하고 경쟁한다.
이전의 삼성은 일본의 기술을 베낀 적이 있었고, 지금의 일부 중국 기업은 선진 기술을 몰래 훔쳐 쓰다 문제가 되고 있다. 경쟁에서 지게 되면 그 회사는 도태되어 사라지기 때문이다.
정확히 맞는 예는 아니겠지만 과거의 정치판을 살펴보자. 조선시대, 당쟁에서 패하면 유배, 귀양은 물론 사약에 참수까지.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참수되어 목이 저잣거리에 내걸리거나 사지가 찢겨 죽는 능지처참에 처해지기도 했다.
이런 판에서는 다른 당파와 인물의 우월함(재능)을 인정할 가치 판단 자체가 존재할 수가 없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이 없는 사냥터가 되는 것이다.
사자나 하이에나가 사냥하듯이, 사냥감을 놓치면 굶어 죽어야 할 상황이 인간에게 고스란히 적용되는 것이다. 여기에 무슨 도덕과 예절과 선악이 존재할 수 있으랴?
삶과 죽음 생존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 어떤 수단도 선(善)이 되어 버린다.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나라를 지켜야 하고, 가족이 죽음의 기로에 서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그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살려내야 하는 것이다. 살리에르는 모차르트의 재능으로 인해 파멸해 가는 자신의 모습을 삶과 죽음의 극단적인 상황으로 인식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르에게 많은 연민과 공감을 느낀다. 살리에르의 행동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 나 같은 범인(凡人)들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닌지?
이 시대, 오늘, 나와 같은 범인(凡人)들이, 그래도 나름의 선악의 가치를 지켜가며, 놀라운 재능을 가진 특출난 이들과 경쟁하며 분투하고 있다.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자신의 양심을 지켜가며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이런 범인(凡人)들을 위해 마음속으로 장하고도 열렬한 응원의 박수를 보내본다.
이 시대의 선한 살리에르들이여! 만세!
※ 살리에르 증후군 : 천재성을 가진 주변의 뛰어난 인물로 인해 질투와 시기, 열등감을 느끼는 증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