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미술 전시회 구경을 갔었는데, 전시관 현관에 한 5자쯤 되는 수초 어항이 너무 멋있고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저런 어항을 우리 집에도 놓아보자. 최대한 싼 값에 DIY로 제작해서'라고 결심하고, 이리저리 인터넷을 뒤졌다.
일산화탄소도 사고, 정수기도 사고. 주간 정보지에서 2자짜리 중고 어항도 2만 원에 사서, 수초를 심고, 구피랑 네온도 넣어 길렀다. 이리저리 손이 많이 가고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자리를 잡자 수초도 잘 크고 구피와 네온도 잘 살아 주었다. 그런데 어항을 관리할수록 어항 밖에서 보는 평화로운 모습과는 달리 어항 속에는 약육강식의 무서운 생태계가 숨어 있었다.
구피의 속성을 아시는지? 평화롭게만 보이는 열대 어항의 진실은? 구피는 암놈이 산란기가 돼서 배가 부르면, 수놈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처음에는 "아! 사랑도 대단하여라. 저렇게 암놈을 못 잊어 졸졸 따라다니다니!" 했었다. 집사람도 덩달아, "저 구피 좀 배워 보셔. 얼마나 절절하게 사랑하는지!" 하면서 약간 구박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수놈이 암놈을 졸졸 따라다니는 이유는, 암놈이 새끼를 낳으면, 새끼들이 태어나는 족족 바로 먹어버리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산란기가 되면 암놈만 따로 가두어 새끼를 보호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구피들에게 다 잡아먹힌다.
네온을 혹시 키워 보셨는지? 예쁘게 생겨서 한량없이 순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무리 중에서 한 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이고 비실거리면, 그놈을 끝없이 괴롭혀서 결국 죽게 만든다.
물론 이런 활동을 통해 개체 수를 스스로 조절하고 어항의 생태계를 유지해 나가기도 하지만, 평화로워 보이는 열대어 어항의 진실은 비정하기만 하다.
뻔한 얘기지만 우리네 세상도 비슷하지 않은가? 학생 왕따도 모자라, 직장 왕따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각종 사기 사건과 엽기적인 인간의 행각들은 어항의 진실과 다를 바 없다. 범죄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지금은 사회 시스템이 안정되고 정착되어, 범죄율도 낮고, 질서도 잘 지키지만, 조금만 사회 시스템이 무너져서 환경이 안 좋아지고 배고파지면, 열대어처럼 잔인한 인간의 본성이 여기저기서 나타날 수도 있다.
아프리카 내륙에 르완다라는 작은 나라가 있다. 면적은 우리나라의 1/4, 인구는 1,200만 명 정도이다.
이 나라를 구성하는 두 부족이 있는데 투치족과 후투족이다. 1994년경 투치족과 후투족의 인종 분쟁으로 인하여 단기간에 150만 명이 학살되었다. 제국주의 식민 통치의 잔재가 남긴 갈등과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측면도 있긴 했지만, 본질은 부의 불균형으로 인한 인종 충돌이었다. 두 인종이 섞여 살았기에, 사실 투치족과 후투족의 외모상 구별이 어려웠음에도, 서로 편을 갈라 죽이고 이웃의 재산을 빼앗았다. 죽이는 방법도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이러한 분쟁과 학살의 예는 지구상에 너무도 많아서 헤아릴 수 없는 정도이다.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졌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야만적인 행태는 인간의 본성이 구피나 네온과 다름없음을 보여주는 슬픈 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