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오해는 오해하는 사람이나 오해받는 사람이나 쓸데없는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
나와 다른 부서에 근무하는, 직급이 나보다 한 단계 낮은 분이 한 명 계셨다. 업무로 인해 인연을 맺은 지가 한 5년은 되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업무에 무척 협조적이었고, 둘 사이의 관계도 좋았다. 사람을 상대해 보면 그 느낌을 알 수 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분을 상대할 때마다 그분의 말투가 뭔가 도전적이고 행동도 비협조적으로 변해 있었다. 날 대하는 인상도 별로 안 좋았다. 나의 업무가 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업무이다 보니 그냥 그런 줄 알고 신경 쓰지 못하고 생활했다.
어느 날 그분으로부터 내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화가 난 목소리로, 자기가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는데 왜 답장이 계속 없냐는 거였다. 나는 그런 문자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분은 그럴 일이 없을 텐데 하면서 자기가 문자를 보낸 전화번호를 내게 불러주었다. 내 핸드폰 전화번호의 끝자리 숫자가 한 개 잘못되어 있었다.
그분은 이전부터 핸드폰으로 나에게 전화도 하고 문자도 보냈었는데 전화를 받지도 않고 답장이 없어 무척 자존심이 상하고, 무시당한 것 같아 내게 화가 났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쓸데없이 오해해 미안하다고 하면서 사과했다.
그 후, 우리의 관계는 회복되었고 그분은 예전보다 나를 더 친밀히 대했다. 오해란 아마 이런 것일 것이다.
다행히 그분과는 서로 오해의 원인을 알았기에 오해를 풀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는 얼마나 많은 오해들이 존재할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특히 요즘 같은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흥! 그러거나 말거나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살지 뭐! 신경 쓸 것 있나!''라고 서로 무관심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러다 보면 오해들이 쌓여 감정이 생기게 되고 심각한 경우에는 상대방에 대한 적의가 생기기도 한다.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한 것 같다. '제 놈이 그렇게 잘났대? 두고 보라지!'. 이런 류의 생각들이 많아지고 대화나 소통 자체를 안 하기 쉽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속마음은 적의를 품으면서도 겉으로는 아주 친한 척, 생각해 주는 척한다는 것이다. 마치 노회한 정치인들처럼 말이다.
이것은 오랜 세월 삶을 살다 얻은 일종의 생존 법칙 같아 보인다. 나이가 들면서 터득한 것이니 탓할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앞뒤가 다르다고 멸시받고 꼰대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런데 희망은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소수의 사람이긴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지혜로워지고 마음을 더 여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는가?
물론 나는 후자가 되길 원한다. 그것도 아주 간절히. 작은 틀에서 벗어나 멀리 바라볼 때다. 그런데 그냥 마음만 먹는다고 공짜로 되는 것은 아니다. 각고의 노력과 끝없는 자기성찰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참으로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려운 풀기 힘든 난제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