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종의 기원', 진화론. 난 제대로 읽어 보진 못했지만, 귀동냥으로 들은 바에 의하면, 자연선택에 의한 적자생존이 그 중요 내용인 것 같다.
예를 들면 공장 지역에서, 스모그가 있는 날이면 흰 나방은 천적의 눈에 금방 띄어 죽기 십상이고, 화창한 날이면 검은색 나방이 천적의 눈에 먼저 띄어 죽어 나가서, 결국에는 희지도 검지도 않은 회색 나방이 살아남아 자손을 전하고 있다는 관찰 결과 같은 것 말이다.
자연 세계 승리의 절대 조건은 생존과 더불어 종족 보존이 아닐지 생각된다. 주변의 천적이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살아남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처럼 보인다.
혹시 '네펜 데스 로위'라는 식물 이름을 들어보셨는가? '나무 두더지'의 배설물을 영양분으로 얻기 위해 마침내 화장실이 되어 버린 어느 식물의 이름이다. 식물조차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는 것이다.
인간 세계에서는 어떨까?
내가 보기에는, 인간 세계에 있어서도 흰색도 검은색도 아닌 회색빛 사람들, 좀 심하게 얘기하면 회색분자들이 잘 살아남지 않는가 싶다.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주장하고, 주관이 뚜렷한 사람들은 자연히 주변에 적이 많이 생기게 되고, 그런 적들로 인해 도태되기 십상이다.
자신의 의지를 마음속에 숨기고,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도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하며, 어느 정도 권력에 붙어 사는 사람들이 끝까지 생존하고 출세하지 않는가?
좋은 말로 치면 부드럽고 유한 사람이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여기에 붙고 저기에 붙은 기회주의자는 아닌지?
주변에 출세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대다수의 사람이 이런 범주에 속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삼국지나 사기(史記)를 한번 봐보자.
삼국지에 가후라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혼란의 시절에 주인을 자주 바꾸어 가면서도 중용 받고, 끝까지 살아남았다. 비정한 시기에 그렇게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대단한 일이기도 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다른 눈으로 그를 본다면? 자신의 신념도 없이 색깔을 바꾸어 가며 살았던 카멜레온 같은 부류는 아니었는지?
그와 반대로 늘 조조의 곁에서 충심으로 그를 모셨지만, 끝내는 한(漢) 황실을 옹호하다 죽어간 순욱과 한번 비교해 본다면 누구의 삶이 더 나은 것일까?
분명한 것은 역사는 가후를 대단한 인물로는 평가하지만 존경해야 할 인물로는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기(史記)에는 진평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그도 주인을 바꾸어 가며 중용 받았고, 유방이 죽은 후 여태후 시대까지 신임받으며 살아남았다. 물론 진평의 경우는 가후와 좀 다르기는 하다. 여태후 사후, 다시 유방의 유씨를 일떠세운 충신이었으니까. 그는 다른 사람의 지표가 되어도 모자람이 없다.
그런데 만약 진평이 여태후가 죽기 전에 죽었다면, 그도 가후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반열의 사람이긴 하다.
글쎄?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뭐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특별한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존경하는 인물들인 이순신, 안중근, 윤봉길 등 대다수의 위인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사람들이다.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회색분자처럼 살아가는 것만이 전부인지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대목이다. 더욱이 요즈음처럼 원칙도 법칙도 없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은 오로지 개개인의 선택의 문제임은 바꿀 수 없는 사실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