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궁 홍씨'와의 인터뷰

by 박대우

사도세자가 죽은 지도 벌써 20여 년이 지났습니다. 당시 사도세자를 죽인 사도세자의 아버지 영조가 죽었고, 이후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아들이 되는 정조가 영조의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 임오화변을 겪은 혜경궁 홍씨의 심정이 어떨까 매우 궁금합니다.

'세상의 알고 싶은 이야기'팀의 '세알이' 기자가 혜경궁 홍씨를 인터뷰했습니다. 혜경궁 홍씨가 여러 번 거절한 것을 설득하여 어렵게 만든 자리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어려운 인터뷰에 응해 주신 혜경궁 홍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세알이 기자 : 반갑습니다. 마마.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혜경궁 홍씨 : 아닙니다.

- 세알이 기자 : 가슴에 응어리가 많으실 텐데요, 사도세자는 어떤 분이셨나요?

- 혜경궁 홍씨 : 원래는 가슴이 따듯한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인 영조의 기대가 너무 컸고,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이 저의 남편인 사도세자를 주눅 들게 한 측면이 많았습니다.

- 세알이 기자 : 예를 들면요?

- 혜경궁 홍씨 :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어렸을 일 들입니다.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아들을 보면 불같이 화를 내고, 신하들 면전에서 망신을 주기 일쑤였습니다. 특히 대리청정 때는 더욱 심했습니다. 남편은 시아버지인 영조의 눈치를 보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번뇌로 인해 며칠 밤을 새우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사람을 죽이기 시작했어요. 내시, 나인, 노비 등 100여 명을 죽였습니다. 저도 바둑판에 눈을 맞아 심하게 눈을 다쳤거든요. 시어머니셨던 영빈 이씨조차도 그런 아들의 광기를 두려워했어요.

- 세알이 기자 : 그랬군요. 많이 두려우셨을 것 같습니다

- 혜경궁 홍씨 : 네. 저도 생명의 위협을 느꼈죠. 제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남편의 후궁이었던 '빙애'가 맞아 죽었을 때였어요. 그때 남편은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너무나 무서웠어요.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그렇게 때려죽이다니.

- 세알이 기자 : 마마께서 남편을 끝까지 보호하지 못하고 당쟁에 휘둘렸다는 비판이 있던데요?

- 혜경궁 홍씨 : 그런 평가는 너무나 억울합니다. 저는 아들을 보호해야 했어요. 100여 명 가까운 사람을 죽인 광인에 가까웠던 남편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저를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의 생모였던 영빈 이씨조차도 아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으니까요.

- 세알이 기자 : 그렇군요.

- 혜경궁 홍씨 : 그리고 당쟁에 휘둘렸단 말은 정말 말이 되지 않습니다. 왕이 되실 분이었고, 저의 아들의 아버지이자 저의 남편입니다. 어떻게 제가 당쟁에 휘둘려 남편을 죽일 수가 있겠습니까?

- 세알이 기자 : 남편인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 아쉬운 점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 혜경궁 홍씨 : 어찌 아쉽지 않은 수가 있겠습니까? 남편이 정신적으로 온전했다면...., 아버지인 영조가 그렇게 엄격하지 않고 자애로웠다면, 우리 남편은 현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도 축복받은 왕후로서의 인생을 살았겠지요. 아버지의 엄격함이 낳은 비극입니다.

- 세알이 기자 : 네. 알겠습니다. 아드님이신 현재의 정조를 지키 내시기가 많이 힘드셨을 텐데요?

- 혜경궁 홍씨 : 네.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우리 아들이 왕이 되기까지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팔색조 같은 성격인 영조의 눈치를 보며, 그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왕위 수업을 받는 우리 아들이 너무나 힘들었을 겁니다. 그걸 이겨낸 우리 아들이 너무나 대견합니다.

- 세알이 기자 : 네. 그렇겠습니다. 마마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하셨을지 이해가 갑니다.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힙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 혜경궁 홍씨 : 네. 감사합니다. 어쨌든 지금 저의 아들이 왕으로 있으니,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도록 뒤에서 미력이나마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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