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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빵 Apr 22. 2022

공항 지상직 - 일본 항공사에서 배운 OJT의 찐 의미

입사만 하면 불행 끝 행복 시작일 줄 알았는데...




"진짜 나도 저 유니폼만 입을 수 있다면, 월급 안 받고도 일할 수 있는데." 입사하기 전 여러 번 승무원/지상직 면접을 떨어지며 했던 생각이다. 그리고 그 바보 같은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건지 입사 후에 처절히 깨달았다.


보통사람들은 공항 체크인 카운터에서 앉아서 일하는 지상직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와 앉아서 예쁜 유니폼 입고, 컴퓨터 몇 번 두드려서 티켓만 주면 되고, 진짜 부럽다 부러워"


이 글로 그 생각을 철저하게 부숴주겠다.


어느 날 승무원/지상직 면접을 합쳐서 7번째 만에 일본 항공사에 합격했다. 합격 메일을 받고 정말 기뻐서 펑펑 울었다. 그런데 입사 후에 "너 그때 울었던 기쁨의 눈물이 마지막 기쁨이야."라고 말해주듯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먼저, 입사하자마자 체크인 카운터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도쿄에 하네다/나리타의 훈련센터를 왔다 갔다 하면서 기초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나마 하네다의 훈련센터는 양반이었다. 약 일주일간 회사 사상, 회사의 경영이념 등의 관한 교육이었기 때문에 딱히 외울 것도 공부할 것도 없는 교육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나리타공항의 훈련센터로 옮기게 되었는데, 갑자기 몇 권의 두꺼운 책을 보급해주더니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밥 먹는 시간 1시간을 빼고 하루 종일 앉아서 수업을 듣고 매일 6시까지 테스트를 봤다. 당일에 배운 내용은 무조건 익일에 시험을 보았기 때문에, 저녁에 호텔에 돌아가서도 맘 편히 쉴 수가 없었다. 시험에 한 번에 통과를 못하면, 보통 저녁 9시까지 재시험을 보곤 했다.


그 두꺼운 책들에 얼마나 외울게 한가득이던지. 항공사에서 업무 할 때 쓰는 알파벳 부르는 법부터, 세상 태어나 처음 보는 항공 용어, 각 국의 VISA 이름, 환승 체계 등...

정말 고3 때 이렇게 공부를 했으면 서울대를 갔겠다 싶을 정도로 밤낮없이 공부만 했다. 그동안 공부 안 했던걸 벌 받나 싶을 정도였다.


심지어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다음날 늦게까지 잠을  수도 없었다. 매일 스프레이를 너무 뿌려서 머리가 돌처럼 딱딱할 만큼 잔머리 하나 없는 ~끔한 쪽머리를 하고, 메이크업 또한 풀메이크업을 해야 했고, 타이트한 정장과 셔츠를 매일 주름 하나 없이 다려 입느라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도 시간이 모자랐다.


그렇게 훈련센터에서 일주일을 보내니 그다음 주부터는 스트레스로 위가 꼬이기 시작했지만, 간절히 원했던 일이었던 만큼 버티고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 피, 땀, 눈물을 다 담은 훈련센터 수료를 하고, 내가 배속받은 신치토세공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유니폼을 받았다. 정말 세상 기뻤다. 유니폼 입고서 셀카를 몇백 장을 찍었는지 모른다. (아직도 그때의 기쁨의 셀카들이 클라우드에 몇백 장 담겨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든 훈련을 받고, 유니폼도 입었으니 당연히 카운터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카운터에 앉아보기는 커녕, 막내라는 이유로 온갖 잡일은 다했다.


먼저 선배님들이 체크인할 카운터 세팅을 미리 해야만 했고, 체크인이 끝나면 세팅했던 물품들을 다 다시 정리했다. 그리고 체크인은커녕, 체크인하는 선배들 뒤에서 선배들이 뽑아주는 가방 태그를 수하물에 붙이고

그 20-30kg 되는 수하물을 벨트에 내려보내기 위해 낑낑대면서 하루를 다 보냈다. 덕분에 땀을 너무 흘려서 집에 오면 늘 샤워부터 했다. 정말 내가 수하물 파트에 잘못 들어온 줄 알았다. 하하하하하.


그리고 항공편이 없는 시간이면 오피스에서 가만있기가 눈치 보여서 늘 청소를 도맡아서 했다. 막내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3개월 정도를 보내고 드디어 체크인 카운터 교육에 들어갔다. 내가 있던 항공사는 신치토세공항 국제선에서는 외국항공사와 계약해서 핸들링을 했기 때문에 그 외국항공사 체크인 기초교육에 들어갔다. 약 3일 동안 선배랑 기초교육을 받았고, 그 교육 내용은 절대로 머릿속에 모두 다 외울 정도의 양이 아니기에 밤새도록 안초코(あんちょこ、한국에서는 족보라고 불림)를 만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첫 OJT에 들어갔다. 내 OJT담당 선배는 국제선에서 가장 손이 빠른 선배였다. 어떤 손님이 와도 그 누구보다 빠른 체크인을 했고, 가방에 태그를 붙이는 것도 후배의 도움 없이 그 선배가 붙이면 1초 만에 붙이기가 가능했다. 체크인이 끝나고 오피스에서 누가 가장 체크인 한 손님수가 많은가를 체크한 적이 가끔 있었는데 늘 그 선배가 1등이었다. 그 정도로 손도 일처리도 빨랐다.


그런데 그 선배 눈에는 세상 태어나 처음 체크인하는 후배인 내가 얼마나 거북이 같아 보였겠나. 결국 뒤에서 지켜보던 선배에게 느리다는 이유로 자리를 뺏겼고, 그 선배는 나에게 OJT의 진짜 의미를 일본어로 가르쳐줬다.


"OJT、お前邪魔だからたってろ!!"

(OJT O=OMAE, J=JYAMA T=TATTERO

너 방해만 되니까 가만히 서있어)


그렇게 이야기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정말 기분이 나빴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참고 집에 가서 울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 나는 그저 신입 후배 막내 쭈구리일 뿐이니까...


"월급 안 받아도 항공사에서 일하고 싶어!!!"라고 했던 나의 외침을 지나치게 후회하게 만드는 나의 첫 항공사

OJT는 그렇게 언어폭력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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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sorapp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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