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낮은 물론이고 그 사람의 밤까지 가지고픈 욕망에 사로잡혀 버렸다. 그날 밤은 서로의 감정을 믿고 서로의 밤을 훔치는 확신범이 되려 하였다. 그저 단둘이 “짠”을 외치며 아무런 목적지 없는 여행길에 오른 것처럼 이유도 모른 채 서로가 만났다. 사람들이 흔히 부르는 ‘썸’이라는 것. 확신과 의심이 밀물과 썰물처럼 들어왔다 말았다 반복한다. 결국엔 확신만 남게 되어 의심의 농도는 점점 옅어지고 비로소 사랑이 시작된다. 참을성이 없고 확실한 걸 선호하는 나는 진짜 내 속마음을 들키고 말았다. 웃기게 들릴 수도, 술안주로 삼을 법도 하지만 상관없는 노릇이었다. 난 그 사람을 맘에 품었고 인생사를 공유함으로써 하루라도 더 빨리 알아가고 싶었다. 그 사람에게 좀 더 내가 매력적으로 보였으면 바랬다. 더 알아가고 싶었고 나에 대해 더 보여주고 싶고 더 많은 것을 함께하며 미래를 그려보기도 하였다.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심장이 정상은 아니었다. 터질 것만 같았고 느낀 적 없는 진짜 사랑이란 걸 추측해 볼 수 있었다. 괜히 그 사람의 부족한 점을 내가 대신 채워주고 싶고 감싸 안아주고 싶고 서로의 깊은 교감을 원했다. 침묵 속에서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보고 싶고 그렇게 서로 행복한 단잠에 빠지고 싶었다. 눈을 뜨면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고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모든 순간 함께 하기를 바랐다. 내가 좋아하는 가사의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고 그 사람 몸이 아플 때도 대신해서 아파해 주고 싶었으니까.
그러면서 왜 보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나 지금 와서 후회해봤자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지난 날의 미련만 남는 법이다. 연락 두절이 다 내 탓인 것 같고 과거의 내 행동들에 괜히 신경 쓰인다.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면 그 사람의 표정을 읽고 싶다. 사과를 건네고 싶을 뿐이다. 그 이상의 목적을 바라는 것도 아닌. 진솔한 이야기를 바란다. 그땐 진심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린 더이상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더 이상 행복을 위탁하지 않는다. 친한 지인이 나 혼자 즐기는 모습을 볼 때면 많이 외로워 보인다고 한다. 혼자 걷다 들어간 카페에 들려 수다 없이 디저트에 몰입도 해보고, 사진도 찍고 나 혼자 자주 즐기는 편이다. 남 눈치 안 보고 남을 배려하느라 소비할 에너지를 오로지 나에게 쏟아붓는 것도 좋아한다. 전혀 외롭지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집중했다.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려 내가 날 챙겼다. 혼자서의 내공이 높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스스로 삶을 대접할 줄 아는 어른이 되기 위해 몇 가지 습관을 들이려 노력도 하였다. 그런 사람이라면 어떠한 관계에서도 홀대받을 수가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외로운 감정은 들었지만 그건 인간의 본능이라 생각하니 외로움에 사뭇 치지 않으려고 더 이상 사람을 찾아다니는 건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내 옆에 없다고 해서 외로움을 느끼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나의 행복을 남에게 위탁하지 않고 산다. 외로움은 배고픔과 목마름 같은 거다. 본능에 가까운 거다. 그러니 타인으로는 외로움을 없앨 수 없는 노릇이다. 나의 행복이 남 아래에 놀아나는 그런 일들은, 쉽게 좌지우지되는 일들은 없도록 해야겠다.
사는게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많은 감정들이 안에서 소용돌이친다. 이런 글을 적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래도 내 머리 속에 두루뭉술 떠다니는 추상과 감정을 눈으로 읽을 수 있게 한다. 글의 위대함을 느낀다. 마치 공중에 수증기를 붙잡아 노트에 H2O라고 적는 것과 비슷하달까. 글을 쓰며 사랑 고백할 줄은 그 누구도 몰랐던 일이다. 속마음을 보여주는 일에 유독 자신이 없었던 나는 글을 적음으로서 마음껏 결핍을 해소한다. 가치 있는 일이라 여기고 이제는 재미까지 들릴 지경이다. 내 취향이 다른 이들의 취향이 되고, 그다음은 더 새로운 걸 원하게 된다. 그건 독자와 필자의 내면적 풍요이다. 나는 매일 밤 나의 진짜 속마음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