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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May 06. 2021

지금 나는 개보다 행복할까?

개 같은 내 인생이 좋은 이유

나는 언제나 행복에 집착해왔다. 나에게 행복이란 명확한 하나의 이미지였다. 그놈의 '시크릿'인지 뭣인지 때문에_ 한 때는 미친 건지 멍청한 건지 무조건 '믿습니다!'했었다. 구체적으로 생각할수록, 실제처럼 느낄수록 현실화가 더 빨리된다더니! 전세계인이 '시크릿'을 알 정도로 오래도록 생생하게 그렸건만- 왜 아직도 내 마음속 그림으로만 저장되어 있는 거냐!!


마음속까지 비쳐줄 햇빛과 신선한 바람. 그 시원한 바람에 싱싱한 짠내가 느껴질 만큼 푸르른 바닷가에 이층짜리 집을 짓고, 어설픈 실력이지만 구색 맞춰 가꾼 정원에서 다윈과 뛰어노는 그 한순간! 그 한순간이 나의 완벽한 행복이다.          


돌이켜보면 항상 그런 식의 사고였다. 내가 원하는 모습, 내가 만족할만한 그런 위치, 그런 환경... 나는 어디 있는지 모를 내 행복의 이데아를 정해 놓고, 그 속에 갇혀 지냈다. 그랬기에 나에게는 언제나 '지금'이 없었다. 지금의 나는, 현재의 내 모습은 언제나 내 마음속 그림과 너무나 다르니까. '아직 아니야, 지금 이런 게 나일리 없어.' 했던 답답한 순간들은_ 몇 년이 흘러도 항상 부족하고 못마땅한, 후진 모습 그대로였다. 얼마나 흘러야 내 마음에 쏙 드는 내가 되어 있을까. 매일이 지나도 한참 멀었다. 그렇게 나는 여태껏 현재도 미래도 살지 못한 채_ 내 마음에도 끔찍이 마음에 안 드는 못난이로 지내왔다.    




다윈을 '다윈'으로 부르기 전_ 제일 유망했던 이름 후보는 '러셀'이었다. 나는 러셀을 좋아했고, 다윈은 잭 '러셀' 테리어이기도 하니까. 나에게 러셀은 뭐랄까. 완벽한 사람 그 자체였다. 철학자이면서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문필가, 그러면서도 수리 철학과 기호 논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세계를 열어준 수학자이기도 했으니- 문과 이과를 넘나들며 손대는 족족 눈부신 업적을 이뤄낸 거다. 뭐 이렇게나 뭐든 다 잘한 걸까, 일반인 기죽게! 

매일매일 꽃 같은 너. 다윈은 우리에게 항상 꽃 한 다발의 행복을 안긴다. 

러셀은 <행복의 정복>에서 행복이 저절로 굴러들어 오는 복이 아니라고 했다. 그보다는 꾸준히, 끝없이 노력해서 갈고닦아 쟁취해내야 할 근육이자 체력이라고 했다. 


세상으로 나가라.
해적도 되어보고, 보르네오의 왕도 되어보고, 소련의 노동자도 되어보라. 

러셀은 뭐든 해보라고 했다. 오매불망 기다리며 속 끓일 것이 아니라, 오든 말든 신경 끄고 밖으로 나가 보라고. 그리고 불행하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체념하고 무릎 꿇지 말고, 용감하게 맞서서 정복해버리라고. 나는 한방 맞은 듯했다. 시크릿도 좋지만_ 나에게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스스로 희망 고문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정복시켜서 제압해 버릴 행복이 더 좋다. 생각에 갇혀서, 환경에 얽매여서, 권태로, 걱정으로 죄의식으로, 처절한 경쟁으로- 이렇게 저렇게 불행해야 할 이유가 백만 천만 가지나 있대도, 러셀은 단조로운 삶도 평안의 매력이 있다고, 침울한 마음속에 빠져있지 말고 바깥세상의 리듬에도 몸을 맡겨보라고 한다. 

   


다윈과 나는 공원에 자주 나간다. 짧은 줄을 긴 것으로 바꿔 채우고, 드넓은 잔디를 찾아 오늘도 다윈이 좋아하는 빨간 공을 던진다. 쏜살같이 화살처럼 공을 향해 달리는 다윈을 보면- 내 마음까지 시원하고 청량해지는 쾌감을 느낀다. 내가 던져 준 작은 공을 꽉 물고, 내 강아지가 다시 신나서 나를 향해 달려온다. 파랑새를 찾았던 꼬꼬마의 마음이 되어_ 나도 모르게 절로 웃는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_ 뜨끈한 평화가 감돈다. 퍼스에서 봤던 그 행복한 개와 보호자의 그림 같이 아름다운 순간을- 나는 다윈과 매일 이루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 하고 읊조린다. 헉헉대며 내 손에 공을 물어 놓는 다윈에게 "고마워."하고 이 따뜻한 털복숭이를 어루만진다. 


한 마리 짐승이 되어 그들과 함께 살고 싶다. 
저렇게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삶이 있는 것을. 
나는 선 채로 오랫동안 짐승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걱정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어둠 속에 깨어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눈물짓지도 않고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들먹여 나를 역겹게 하지도 않는다. 
불만을 드러내는 놈도 없고, 소유욕에 혼을 빼앗기는 놈도 없다. 
다른 놈이나, 먼먼 조상에게 무릎 꿇는 놈도 없다. 
이 지구를 통틀어 보아도 어느 한 마리 점잔 빼는 놈도, 불행한 놈도 없다. 
- 휘트먼, <나 자신의 노래 32>

오늘도 웃는 다윈. 다윈은 매일매일이 그저 행복이다.

아무리해도 잡히지 않는 행복을 쫓느라, 나는 감사함을 몰랐다. 매일 내가 해내고 쳐내는 그 작은 일들에도, 나는 내게 너무 인색하고 매정하게 '이깟 거'라고 했다. 매일매일 그 '이깟 보잘것 없는 것'이 쌓여, 어느 날 꽤 괜찮은 보상을 얻었어도- 나는 또 '아직도 멀었다'라고 못되게 괴롭혔다. 상을 준 누군가에게도, 상을 받는 나에게도 이렇게나 뜨뜻미지근했으니 온 우주는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을까. 감사할 줄 모르는 옹졸한 이에게 아무리 너그러운 우주래도_ 밉상으로 보였을 것이다. 

 어떤 날은 비좁은 곳에서 재우고, 또 어느 날은 공놀이를 못해줘도, 때로 산책도 못하고 집에서만 놀아야 한대도- 다윈은 항상 웃는다. 공이 몇 개든, 그리도 죽이 잘 맞는 동네 친구가 있든 없든- 다윈은 언제나 지금 바로 즐거움을 찾는다. 그리고는 열심히 놀 줄 안다. '개 같은 인생'이면 너무 행복하지 않을까. 열심히 뛰고 열정적으로 구르는 이 생명체를 보면- 때로 깊은 존경심까지 느껴진다. 나는 항상 지금은 아니라며 행복을 미루기만 했는데, 다윈은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듯_ 그저 지금에 충실한다. 참으로 멋지다, 개란 생명은!  

   

나는 지금 너무나 감사하다. 나에게는 '따뜻한 강아지'가 있기 때문에, 매일 매순간 몸소 행복을 보여주는 다윈이 있기 때문에. 실체 없이 추상적이기만 한 '행복감'보다는 지금 내가 다윈을 통해 느끼는 '감사'의 마음이 더 따뜻하다. 앞으로는 생각 없이_ 다윈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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