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미스터리, 호러, 서스펜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조난물(?). 하나의 장르로 정의하기 어려운 영화는 넘쳐나지만 <샤이닝>처럼 각각의 범주안에서 충실한 영화는 드물다.
놀라게 함으로 '공포'를 조장하는 기법에서 벗어나, 인물과 배경의 '미스터리'를 곳곳에 배치하고, 핏빛 '호러'로 가득 채운 뒤, 한 순간도 긴장을 놓치지 않는 '서스펜스'로 유혹하여, 뛰어난 풍광의 호텔을 배경으로 풀어가는 한 가족의 밀실 살인극. (거의 최초로) '스테디 캠'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만들어 낸 복도 씬의 독특한 분위기는 세발자전거에 공포라는 테마를 부여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다시 본 <샤이닝>은 시간으로 빛이 바래 옛날 같은 전율을 선사하지는 못했다. 쟁쟁거리는 음악소리는 거슬리고, 잭 니콜슨의 아내 역으로 나온 '셜리 듀발'의 헐렁한 연기는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 그래도 콜로라도 산맥의 웅장함과 오버룩 호텔의 로케이션은 여전히 굉장해서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샤이닝> 최고의 캐스팅을 '잭 니콜슨'으로 보아야 할지 '오버룩 호텔'로 보아야 할지는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영화는 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완벽주의 덕분에 수많은 루머를 생산했는데, 문을 부수고 얼굴을 내미는 장면을 위해 문을 60개나 준비해서 3일간 찍었다거나, 피바다 장면은 세트를 닦아가며 9일간 찍었고,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로 가득한 텍스트를 만들기 위해 몇 달에 걸쳐 직접 타이핑했다는 '팩트(fact)'를 보면 진정 공포스러운 것은 사실 감독의 '집념'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글쓰기의 강박'의 사로잡혀 미쳐가는 남자의 이야기라는 부분이 특히 좋았다. 작가들의 킹 오브 킹 '스티븐 킹'의 원작이 가진 모티브가 영화적으로 가장 잘 드러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그 완성도와 중요도 측면에서 '잭'의 일부 설정이 스티븐 킹 자신의 이야기에서 따왔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결국 <샤이닝>은 뛰어난 작가와 뛰어난 감독의 집념이 함께 빚어낸 걸작인 셈이다.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똑같은 문장을 수백 수천번 타자기로 찍어내며 감독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공부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니! 얼른 다윈이랑 나가서 놀아야겠다. 이 특별한 연휴가 모두 끝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