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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을 보는 사랑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by 다윈이야기

특별히 더 맑은 날이면 콜바넴을 생각한다.


마치 눈을 씻고 나온 듯한 기분을 선물했던 2017년의 화제작. 지중해의 특별한 쨍함이 필름을 뒤덮고, 북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광이 주인공들의 놀라운 여름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한다.


그해 여름 하늘 아래 은밀한 것은 오직 두 남자의 사랑뿐이다.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와 올리버(아미 해머)는 그늘 밑으로, 다락방으로, 어둠 속으로 계속 숨어든다. 하지만 끝내 그 사랑도 이 여름의 햇빛을 피해 가지 못한다. 낮은 변함없이 찾아오고, 태양 아래에서 꿋꿋하기에는 몸도 세상도 아직 여물지 않았다.


엘리오는 여름 안에 있다.


영화에 대한 뜨거웠던 팬심의 배경에 두 주인공의 훈훈함이 자리한 것을 모르지 않지만, 그냥 '잘생긴 두 남자가 나와서 대박 친 퀴어무비'라고 결론내기에는 깊은 울림과 여운을 두루 갖춘 영화였다.


사랑이 시작되는 은밀한 순간에 대한 감각적인 묘사는 <캐롤>을 생각나게 하고, 정체성의 혼란으로 흔들리는 내면은 <아이다호>를 떠오르게 한다. 매혹적인 음악은 <헤드윅>을, 동성애자인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불안함은 <빌리 엘리어트>를 연상시킨다. 다만 표면상의 교집합을 넘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좋은 영화로 느껴지는 것은 사랑에 대한 우리의 시선에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항상 인문학을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 인간은 영원히 타자를 욕망한다느니, 두 개로 갈라진 하나

의 영혼이라느니 하는 신화는 때때로 이해를 더욱 벅차게 한다.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심플하다.


사랑의 동상이몽


사랑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동성인지 이성인지, 짝사랑인지 아닌지, 상대방이 나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부차적이다. 사랑은 '나'의 감정이지 '타인'의 감정이 아니다. 기쁨과 슬픔처럼 쉽게 전파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사랑에 관한 한 솔직하려 하고 또 그래야 한다. 서로 다른 꿈을 꾸는 사랑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의 숙명이다.


엘리오에 대한 마르치아의 짝사랑 그리고 엘리고가 동성애자인 사실을 눈치챈 부모의 내리사랑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마르치아가 건넨 영원한 친구로서의 약속과 아버지의 든든한 위로는 불타는 사랑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자명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우친다.


보통의 퀴어무비가 동성 간의 사랑이 일반적인 남녀의 사랑과 별다르지 않다는 지점에서 멈출 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세상에는 서로 다른 곳을 보는 '짝사랑들'이 있음을 두루 살핀다.


분명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 <그해, 여름 손님>은 훌륭한 텍스트일 것이다. 특히 엘리오 아버지의 명대사는 원작을 읽고 싶을 정도로 감동적이어서 굳이 적어 남긴다. 조심스럽고 배려하는 말하기가 필요한 순간이라면 항상 힘이 되어 준다.


Right now, there's sorrow, pain. Don't kill it, and with it, the joy you felt.
지금은, 슬프고 고통스럽겠지만 그걸 없애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네가 느낀 기쁨도 거기 함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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