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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Mar 05. 2021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팍팍한 오늘을 버티게 하는단 하나의 장면

퍼스에서의 일 년, 그리고 발리에서 시작해 그리스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등.. 정처 없이 떠돈 일 년 후_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남편과 나는 나가기 전보다 더 치열하게 살았다. 그래야 했다. 지난 2년 여의 시간 동안 충실히 회사생활을 했던 친구들은 벌써 승진도 하고,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도 했고 아기도 낳았다. 우리는 다시 서른이 넘은 사회 초년생으로 돌아갔다. 이십 대 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기회들이 조마조마하게 겨우 얻을 수 있는 간절한 것이 되었고, 당연하게 나를 향해 주어졌던 것들 또한, 감사히 여겨야 할 한 때의 특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생은 불공평하지만, 또한 삶은 공평한 면이 있다. 지난 시간들이 나에게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경험이었지만, 누군가의 성실함 앞에서는 배부른 신선놀음이었을 테니. 떠나기 전부터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처음에는 이 가혹한 현실이 가슴 아리게 추웠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도 몰랐던 사이, 지난 경험들은 혼란한 세대의 시대적 트렌드 중 하나인 ‘갭이어’나 ‘퇴사 여행’이라는 신조어로 명명되어_ 난 그저 유행을 순순히 따랐던 소비자들 중 하나가 되었다. 딱히 내 이야기를 특별하게 생각해주길 바랐던 건 아니었지만, 한국과 멀어졌던 사회적 끈을 다시 이어가기엔 옛스럽고 진부한 변명이 되었다. 아무튼, 한국은 DNA적으로 전 세계에서 제일 빠른 민족이다.       


서른이 넘어 재취업을 하고, 다시 자리를 잡으려는 생존의 일상이 지속됐다. 제대로 된 집을 구하지 못해 이 집 저 집을 유목민처럼 캠핑하며 지내고, 간절하고 급한 마음에 무슨 일이든 해보겠다고 매일 불안과 조급함으로 스스로를 괴롭혔다. 때때로 답답함과 날카로워진 마음으로 다투고, 서로의 탓도 하고_ 또 후회도 후회 없도록 해봤다.    


귀국한 그 해 겨울은 역대급 혹한이라고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한겨울의 시림과 일상의 냉기, 마음의 동상 속에서 입김을 호호 불며 따뜻해지려 애썼다. 우리는 하루를 마치면 베개를 안고 누워, 후회한다고 투덜댔지만 결국 되돌아간대도 다시 떠돌아다녔을 그때를 그리워했다. 우리는 서로 깊게 동의했다, 이번 생에 인간으로서 맛 본 행복한 삶의 최대치를_ 퍼스에서 만났다고. 어쨌든 우리는 이 세상에서 볼 수 없을 천국을 봤고, 그것이 뭔지 알아냈기에 항상 최종 목표는 그것이면 되는 심플함도 생겼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마음을 뜨끈하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장면이 있었다. 

떠올린 순간 바로 명상과도 같은 평안함을 안겨주는 그 장면. 

그건 집 앞 강가에서 게를 잡고 동네 바닷가에 나가 숟가락으로 전복을 돌 줍듯 땄던 것도, 베란다에 나가 돌고래 가족을 보며 모닝커피를 즐겼던 순간도 아니었다. 로드트립을 떠났을 때 우연히 발견한_ 바다와 하늘의 경계도 없이 신비하게 펼쳐진 해변이라든가 로맨틱한 장소로 유명해진 핑크 호수도 아니고, 330일 이상 맑고 눈부셔서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퍼스 햇살도, 시티 한복판에서조차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이미지도 아니었다. 


발견하자마자 신비함에 한참을 머물렀던 조개 해변





그건 초록의 잔디밭을 달렸던 그 개였다. 

왠지 모르게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떠올랐다. 

그 모습은 내 우울과 불안을 금세 가라앉게도, 지치고 속상할 때 헐떡이던 얕은 숨을 조금씩 조금씩 깊게 차분히 들이마시게도 해주는 강력한 효과가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 개가 웃던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행복 그 자체가 되었다.      


퍼스에서의 어느 날. 공원의 한 낮은 언제나 아름다웠다. 


넓디넓은 공원을 신나게 뛰던 강아지의 함박웃음이, 한겨울 추위를 녹이는 온기가 되어주었다.  

이제사 다시 생각해보면, 

그 해 겨울은 나름, 참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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