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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Mar 10. 2021

나의 강아지와 만나다.

내 몸으로 낳지 않았지만, 날 빼닮은 너


영화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비기너스>에서 깊고 따뜻한 눈망울로, 조곤 다정하게 위로를 전하는 덥수룩한 개. 


영화 <Beginners>의 '아서'. 감독이 이 개의 전작을 보고 내면연기에 반해, 주인공과 대화하는 설정을 했다고 한다. 


그 담백한 바둑이가 믹스견이 아니라 '잭 러셀 테리어'라는 하나의 견종임을 알게 되면서_ 

그동안 영화에서 명연기를 보여줬던 그 많은 '개배우'들이 잭 러셀이었다는 것도 알았고, 

우리에게 '이게 행복이야!'라고 가르쳐 준 공원의 바둑이도, 

달라도 너무 다른 남편과 내가 '너무 사랑스럽다'라고 외치며, 한마음 대동 단결하게 만들어 준_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그 개도 결국 같은 친구라는 걸 깨닫고는, 비로소 모든 퍼즐이 맞춰진 듯했다. 


"땅이 만 평 정도는 있어야 될 텐데?"  


'우리, 잭 러셀을 키울 거야!' 하고 자신만만하게 선언하면, 모두 이런 반응이었다. 

하긴, 견종 백과에서도 그랬다. 


'개는 오랜 세월을 거쳐 사람에게 적응하고 맞추며 진화해왔다. 

 하지만 당신의 개가 잭 러셀이라면, 당신이 변하고 적응해야 한다.' 

 

'비글 위의 악마견'이니, '죽기 전까지 달리는 개'라느니... 

'초보자들은 '절대로' 안된다고, 무엇이든지 '상상을 초월'한다고_ 여기저기서 진지한 충고도 많이 들었다. 

  

남편은 말했다. 


"너랑 똑같잖아. 너랑 사는 내 심정이 어떤지, 너도 느낄 수 있는 기회야!"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난 이미 사랑에 빠졌는데! 

기상천외한 사고와 천인공노할 말썽으로 주인을 울리고, 

나이 들어서는 의젓하게 효도해서 감동으로 울린다는 그 매력에 빠져버렸다. 


끓어 넘치는 에너지와 열정, 꽂히면 안 보고 안 듣는 집요함, 어떻게든 이겨 먹어야 되는 똥고집. 


부인하지 않겠다, 

인간계에 잭 러셀이 있다면_ 내가 맞다. 

깔끔하게 인정한다.        




잭 러셀이라 결정한 후에도, 또 몇 개월을 흘려보냈다. 

살면서 무언가를 결정하는데 이렇게까지 신중에 신중을 기했던 적은_ 단언컨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제 아무리 짐승 같은 에너지라도 내 체력이 이길 거라는 요상한 자신감과 마치 부모가 되는 듯한, 진짜 어른이 되는 듯한 설레는 책임감으로 나의 강아지를 찾았다. 




그렇게 나의 강아지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꿈꿔왔던 것처럼, 영화처럼 운명적이거나 극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게 되었다, 요란함 없이 항상 담박한 바둑이처럼_

내 속으로 낳지 않았어도_ 날 꼭 닮은 녀석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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