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윈이야기 Mar 14. 2021

안녕, 내 강아지!

개가 사람을 선택한다.


"뭐야, 이 못난이는? 얘 빼고 다 귀여워!"  



내가 아는 한_ 잭 러셀 테리어는 양쪽 귀에서 눈두덩이 전체까지 덮는 브라운 무늬와, 눈가에 짙게 그려진 아이라인이 생명이다. 최근 태어났다는 잭 러셀 테리어 오남매 강아지들 사진을 보니, 돌연변이처럼 튀는_ 유별나게도 못생긴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시그니처인 얼룩이 옆으로 옆으로 계속 밀려나 겨우 양쪽 귀 끄트머리에 남아, 눈이 두 배는 더 작아 보였다. 아이라인도 누가 그려주다 말았는지, 안 그래도 작은 눈을 망친 화장으로 더 돋보이게 해 주었다. 동배인 다른 아가들은 멀쩡한데, 이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다 같이 놓고 보니 꼭 대머리 같아서, '잭 러셀'이 아니라 '잭 니콜슨'같았다. 함께 살게 된다면 이 잭 니콜슨 할아버지 빼고 어떤 친구든 상관없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하게_ 그냥 한 번 보고 오자는 생각이 컸다. 

잭 러셀 전문 브리더이시자, 도그쇼에도 나가 수많은 챔피언들을 배출해낸 켄넬을 발견했다. 우리가 아직 너무 초보이기에, 강아지들이 어떤 환경에서 지내는지도 보고_ 도움이나 조언을 좀 듣자는 마음이 더 강했다.

   

가장 왼쪽, 그리고 가장 오른쪽 댕댕이가 바로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전형적인 미모의 꼬물이들과 있으니 눈에 확 띈다. 


운동장같이 넓디넓은 전원주택 마당에, 왕왕 짖으며 공놀이 하는 강아지들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무리에서도 역시나 숨겨지지 않는 강한 비주얼의 잭 니콜슨, 사진에서 우리를 실컷 웃겨 준, 바로 그 녀석. 

실물로 보니 큰 머리에 짧은 다리, 왕발의 환상 비율까지 더해져 보자마자 웃음이 터진다. 

사진이라 그렇지 실제로 보면 귀여울 거라는 일말의 기대마저 헛되이 무너뜨린 특별한 강아지. 

동배 형제들이 밥 달라고 경쟁하고, 장난감 가지고 다툴 때,  

묵묵히 차례를 기다리고, 다른 놀이를 찾아 노는_ 

잭 러셀답지 않게 유난히 순하고, 무던하고_ 마이웨이가 있는 성격이라 하셨다. 


다른 친구들은 호기심 그득한 눈망울로 나와 남편에게 '귀욤미'를 뽐내면서 주변을 맴도는데,

잭 니콜슨 할배는 그러든지 말든지_ 성큼성큼 다가왔다가도, 미련 없이 쿨하게 스쳐가 버린다.     


아가들이 노는 것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느라 시간이 금세 흘렀다. 

실제로 보고는 하트 눈빛을 뿅뿅 발사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뭘 더 고민할 게 남았냐는 남편의 설득에_ 

남아 있는 아가들을 더 찬찬히 살펴보고 하나씩 안아보았다. 


난 어떤 '인연', 혹은 '운명'을 잔뜩 기대했다. 

보자마자, 안자마자 느껴지는 '내 가족이구나!' 하는 느낌! 확신!!

하지만 한 녀석씩 안아보고 뚫어져라 눈을 바라봐도_ 역시, 그런 게 있을 리가...  

어설프게 '감'만 믿고 와서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꼬물이들을 앞에 두고 어물쩍대며 한참 상의를 하려니까_  

남편의 발 밑에서 한 아이가 툭, 툭_ 툭 툭. 

어설픈 몸짓으로 신발을 건드리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다른 강아지들은 자기들끼리 아옹다옹대며 신나게 노는데, 

물색없이 큰 발을 뒤뚱이며 뒤늦은 자기소개를 하려는 듯, 말을 건네려는 듯하는 녀석.    


'얘만 아니면 다 예쁘니까 상관없다'던 그 아이, 잭 니콜슨이었다. 


'아... 아니야, 얘 말고_ 저 친구 거나 아니면 저 녀석이라도... 어쨌든 얘는 아니야, 못생겼다고!' 


마음 한 편으로 열심히 부인하며 바라본 순간, 잭 니콜슨과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이 녀석.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더 억울하고 사연 있어 보인다. 

퍼피만의 호기심 어린 눈망울도, 나를 봐달라는 간절함이 느껴지는 눈빛도 아니었지만_ 

따뜻하고 차분히,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무심(無心)의 느낌이 좋았다. 

하긴, 애초부터 전형적이지 않았다. 얼굴 생김새도, 종특이라는 성격도_

견생 3개월 차에 이런 느낌을 주는 댕댕이라... 우리의 특이한 취향과 맞아떨어지는_ 이 원치 않았던 느낌. 


이 친구는 어째서 견생 3개월 차에 수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걸까.


"다른 애들은 다시 보면 알아나 보겠어? 저 녀석밖에 기억 안나잖아." 


남편의 정곡을 찌르는 한 방.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아듣기라도 한 듯, 이내 신발끈을 오물오물 뜯으며_ 잭 니콜슨이 강렬한 눈빛 한방으로 말했다. 


"뭐 해? 집에 가자!"  


결국 우리는, 이 미운 오리 새끼와 가족이 되었다. 




개에 관해 공부하겠다고 펼쳤던 어느 책에서, 이런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개를 선택한다고 믿는다. 그도 그럴 것이다. 보통 샵에서 새끼 때의 외모에 반해 결정하는 경우가 많을 테니. 하지만 개는 본능적으로 첫눈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자신과 맞는 사람을 분별하며, 개 스스로 자신의 가족을 선택한다. 보호자는 그 개의 선택을 받는 사람이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이 친구가 우리를 선택해 준 것 같다.

'이 어리숙하고 엉성한 인간들아, 나 정도는 돼야 너희를 돌봐 줄 수 있을 것 같아.' 하며.  

우리처럼 일반적이고, 안전하고, 무난하고, 안정적이고, 전형적인 것과 거리가 먼_ 

이상한 인간들을 어여삐 봐주고, 택해 주어서_ 

오늘도 난 잭 니콜슨에게 감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강아지와 만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