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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Mar 15. 2021

다윈의 일상 진화론

그렇게 개 어미가 된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로버트 다윈'은 지극한 애견인이었다. 

그중에서도 테리어 종을 좋아해서 평생 온갖 종류의 테리어들을 반려했다고 한다. 다윈의 친구마저 그에게 '모든 것을 테리어와 연관 짓는다'라고 할 정도로, 테리어와 지내며 알게 된 것들로 자신의 이론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단다. 


영화 속에서 우수에 찬 눈빛으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개를 보며, 철학자 혹은 과학자의 이름을 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자', '데리다', 혹은 '데미안'도 괜찮고, '푸코', 심지어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철학자 '러셀'도 제치고_ 


몇 날을 고심 끝에, 

우리의 '잭 니콜슨'강아지는 '다윈'이 되었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비주얼에 이어, 한 번만 들어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까지 더해져 마음에 들었고, 덥수룩한 턱수염의 젠틀한 양복을 차려입은 노년의 찰스 다윈과 꼭 닮기도 해서였다. 이름이기에 나름의 의미까지 덧붙이자면, 견생을 살아가며 스스로도, 그리고 함께 사는 우리도 날로 멋지게 진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할까.  




다윈과 함께 지낸 처음 한 달간, 난 극심한 몸살을 앓았다.  


그럴 수밖에. 밥도 안 먹고 잠도 못 자고_ 외출은커녕 화장실도 제대로 갈 수 없었다. 

이 심정은 마치 산후조리원에서 이제 막 아기와 함께 집에 온_ 초보맘과 같았다.  

다만 강아지가 사람 아기와 다른 것은_ 발이 네 개나 되는데, 벌써 걷고 달린다는 것. 

하루 온종일 졸졸 따라다니며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또 무시무시한 호기심과 활동력으로 온갖 사고를 쳐댄다. 어지럽히고, 쏟고, 물어뜯고, 싸고, 맥락 없이 달리고... 

한치도 예측할 수 없으니 온종일 항시 대기, 벼랑 끝 대치상황이다. 

눈에 보이면 나를 뚫을 기세로 바라보며 쫓아오고, 눈에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불안함에 내가 쫓아다니니_ 이건 어떤 상황이고, 우린 무슨 관계인지 설명할 수 있으신 분!?   

   

아가 다윈. 이것이 무슨 생후 4개월짜리의 눈빛이란 말인가. 왠지 내 약점을 모두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하다. 


책들과 유튜브 강의에서도 '훈련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강아지도 편히 쉬도록 무관심하라'라고 했지만,  


"그걸 누가 몰라?! 어디 애 키우는 게 이론처럼 딱딱 떨어지냐고!!!"  


함께 쉬어보자고 울타리 안에 넣으면, 낑낑 앵앵 울면서 눈물의 호소를 해대니_ 초보맘의 약한 마음이 금세 무너져 내린다. 어찌 보면 조금 우습기도 하다, 남편과 벌써부터 '개'육아방식 때문에 강아지가 보는 앞에서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니...  


"이놈들이 얼마나 영악한 지 알아요? 보호자가 허술하거나 잘 모르는 것 같다 싶으면, 그걸 기가 막히게 알고 이용한다니까요!" 


번뜩, 다윈을 데려온 켄넬의 대모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맞아! 다윈이의 뜨거운 눈빛을 보며 매번 느꼈던 게 바로 이거였다. 

요 쪼그만 녀석의 눈빛이, 왜 난 계속 무서웠을까 싶었는데_

스스로의 자신 없음과 불안함이 견생 4개월 차 아가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으리라. 

'이렇게 하는 거 맞아? 확실해? 너 알고 하는 거야?' 하는 듯한 눈. 

이 놈도 얼마나 불안할까, 한 평생 같이 살아야 되는데_ 엄마 아빠 시켜주려 했더니만, 이렇게 서툴러서야...    

바로 언쟁을 멈추고 남편과 눈짓으로 방에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배운 대로 거실에 백색 소음을 켜놓고는, 안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고_ 조용히 합의를 봤다.


"애가 보는 앞에서는 싸우지 말자. 개들은 냄새로 감정까지 알아차린다잖아."  


그래, 노력하자, 엄마 아빠가 되었으니.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고, 여태 잘 숨기고 도망쳐왔던 나의 미숙하고 은밀한 부분까지도_ 

다윈은 끝없이 건드려 그걸 마주하게 한다. 


'얘는 왜 배변훈련이 안되지' 하는 조급한 마음, '왜 이런 것도 모르는 거야?' 하는 인내심 부족, 

'오늘은 그냥 산책하지 말자'는 게으름과_ 이해는커녕 무조건 '안돼'부터 외치는 무심함.  


심지어 남편에게까지 어물쩍 넘기면서 그런대로 버텨왔던 약점들이, 

다윈에게만큼은 하나하나 오롯이 드러나서_ 꼭 바로잡고 넘어가도록 만든다.  

어떤 날은 마치 벼르기라도 한 듯, 그 부분만 건드리며 무언의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설득하려는 듯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하고 뼈를 때리는 눈을 할 때도 있고, 

'너 지금 마음이 급하구나, 괜찮아.' 하고 위안을 주기도 한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내 모습을 반추하고 내 마음을 차근차근 읽고 해석하려 했던 적이, 

지금 내 감정보다 원인을 찾고 해결해보자는 실제적인 생각을 했던 경험이_ 있었던가 싶다.      

 

다윈을 키우면서, 내가 공부한 것은 '강아지 잘 키우기'에 관한 것이었지만, 

배우고 깨달은 건_ 사실 나 자신에 대한 것들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 주는 다윈이 고맙다. 

그리고 매일이 다르게, 나를 꽤 괜찮은 인간이자 쓸모 있는 어미가 되도록 만들어줘서_ 다윈에게 감사하다. 


역시, 사람이든 개든 이름이 중요하다. 

우리가, 그리고 우리의 삶이_ '다윈' 덕분에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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