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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Mar 22. 2021

산책을 줄이라고요?

함께 걸으며 너에게서 배우는 것들

아찔했던 다윈의 첫 산책 날.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몸짓으로 온갖 냄새와 소리에 반응하는 똥꼬 발랄 강아지 옆에_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의 몸짓으로 '안 돼!'만 외치는 나. 

멀리서 차가 지나가도 안절부절, 사람만 지나가도 철렁.

대로는 너무 넓게 뚫려서 정신 사납고, 골목길은 여기저기서 뭐가 꼭 튀어나오고... 

신호등 건너편에서 오는 사람들은 또 어찌나 공격적으로 보이는지, 숨이 탁 막히고 식은땀이 난다. 

무의식적으로 지나치던 일상의 모든 것들이 갑자기 엄청난 공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세상이 이렇게나 위험천만한 곳이었던가! 

아가야, 네가 살아갈 세상은 정말 험난하구나... 

  

산책은 어렵다. 견생 5개월 차 강아지는 어디로 튈지 모르고, 담배꽁초든 쓰레기든 무조건 입 속으로 직행이다. 초보 엄마 아빠의 어설픈 대응에 리드 줄은 꼬여대고, 방향 전환이든 멈춤이든 전혀 컨트롤이 안되니_ 한숨만 나온다.

산책도 보호자의 노력과 강아지 훈련의 과정을 거쳐야만 되는 거였다니! 

뭐 하나 공으로 되는 게 없었다... 

공원을 날듯 함께 달리고, 나란히 걷던 퍼스에서의 그 행복한 이미지를_ 언제쯤 나도 이룰 수 있을까. 


첫 산책 날. 금방이라도 벗겨질 것 같은 하네스와_ 여기저기 구르고, 냄새 맡고, 입에 넣느라 꼬질 해진 다윈. 


또다시 공부는 시작됐다. 

집에서는 리드 줄을 매고 집 안을 돌아다녔고, 어떤 날은 현관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 것만 반복했다. 그다음 날은 괜스레 집 앞을 한 바퀴 돌며 걷다 멈췄다 하며 발을 맞췄고, 그다음엔 가던 길을 멈추고는 잠시 차분히 쉬어보는 연습도 했다. 


아가에게 세상을 설명하듯, 작은 움직임도 분절시켜 하나하나 가르치고_ 동작도 차근차근 나누어 연습했다. 같이 하는 사람과 나란히 걷는 법, 함께 멈추고 함께 걷는 법, 차나 오토바이가 위험하다는 것, 가고 싶은 길이나 맡고 싶은 냄새가 있더라도_ 때로는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다윈은 내 말이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갸우뚱거리고, 나는 답답한 마음에 한숨 쉬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특히 땅에 떨어진 건 무조건 맛봐야 직성이 풀리는 버릇과 산책 나온 다른 강아지만 봐도 흥분해서 달려 나가는 본능은 잘 고쳐지지 않았지만_ 한결 나아졌다. 

 우리는 터벅터벅. 같이 오래 걸었다.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 못 하고 날뛰던 강아지도_ 조금씩 익숙해지고 지치면서, 차분히 내 음성과 발짓에 눈과 귀를 기울였다. 

 회를 거듭하고 날이 지날수록 점차 우리의 발짓도 몸짓도, 차츰 닮아감을 느꼈다. 

갸우뚱대던 녀석이 내 말에 눈을 반짝이며 집중했을 때의 기쁨과 그 사랑스러움이란! 

매일 나오는데 매 번 뭐 이리 행복해할까. 그렇지만 네가 좋다니 나도 좋다. 


사실 이 나날들은_ 배움의 시간이라기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여정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그게 아니고!!' 등등의 잔소리와 엉거주춤한 내 몸짓들이 가다듬어지며_ 다윈도 차츰 나를 더 잘 받아들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 다시 생각해보면_ 다윈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기보다, 나의 불명확한 몸짓과 모호한 말을 가지고, 내 생각과 기분대로 움직이도록 강요한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다윈은 '제대로', '정중하게' 표현한다면 무엇이든 들어줄 자세가 되어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 시간들을 거치며 매 번 내가 더 많이 배우고 느끼는 점이 많았다. 

 다윈은 내가 소통을 잘 못하는 인간이라는 걸_ 이런 방식으로 뼈저리게 잘 가르쳐준다.     




"산책을 지나치게 시키시는 것 같아요. 당분간은 좀 줄이세요."  


엥?? 이게 무슨 소리야. 

하루에 두세 번씩 산책을 나갔던 우리. 며칠 전부터 다윈의 눈도 충혈되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같아_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둘러업고 병원에 갔다.  


"선생님, 그럴 리가... 잭 러셀이잖아요.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나치게 산책하면 도리어 안 좋습니다. 아직 아기니까 한 시간 정도만 하세요."


애걔? 하면서 실망하는 우리 반응에, 의사 선생님이 당황했다.  


또 우리 때문이다.  

견종 백과에서도, TV에 나오는 유명한 훈련사도 '잭 러셀 테리어'는 하루에 두세 번 이상, 충분한 시간의 에너지를 방출할 놀이와 산책이 필수라고 했는데! 

 이론에만 빠삭한 엄마 아빠는 이렇게 돌발하는 실제 상황에 하릴없이 무너진다... 


우리의 의욕과 열정이_ 생후 5개월 차 새끼 강아지에게는 버거웠구나.

그 이후로 우리는_ 다윈에게 눈과 마음을 더 잘 기울이기로 했다.      


오늘도 체육공원, 혹은 한강 공원에 나가_ 산책 나온 강아지 친구와 그의 엄마/아빠에게 격렬한 인사를 건넨다. 간혹 사회성이 떨어지거나, 인사할 기분이 아닌 친구들이 화들짝 덤벼들고 컹컹 짖으면_ 다윈은 조용히 바라보다 가던 길을 묵묵히 간다. 


멋진 녀석, 자기도 으르렁 하며 내색 한 번 할 법도 한데_ 

이럴 때는 내 인격보다 훨씬 더 고결한 견(犬)격을 지닌 것 같다.   

 언제까지나 함께 달려줄게! 신나게 뛰어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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