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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Mar 24. 2021

친구 좀 사귀어 봐!

1. 사람이든 개든,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은 어렵다.


나는 친구가 없다. 

  

첫 문장부터 꽤나 센치해지지만, 그렇다. 결혼과 동시에 어느 정도 친구들과 소원해진 지 오래고, 회사를 떠나며 매일 붙어 다녔던 직장 동료들과의 연락도 뜸하다. 요즘 제일 친한 친구는 사실상_ 남편과 다윈이다. 

 나에게는 친구관계가 언제나 큰 고민 중 하나였다. 무리에서 우르르 끼어 놀 때는 좋지만, 단짝처럼 붙어 다니던 친구는 딱히 없었다. 다정히 친구를 챙기는 성격도, 먼저 연락해서 안부를 묻고 약속을 잡는 타입도 아니고, 친구와 우정 여행을 떠나거나 데이트를 즐길 만큼 '인싸'적이 지도 않다. 그나마 곁에 맴돌며 손 내밀면 잡아주는 친구 몇 조차도, 이제는 각자의 가정과 일상 돌보기에 바빠서_ 생사만 겨우 확인하는 정도가 되었다. 서른이란 나이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모두들 다른 직장, 결혼, 출산 때문에 달라진 라이프 스타일, 변해버린 관심사로_ 점점 더 멀어져 간 것 같다. 

 어쩌다 이리되었나. 옛 노래 가사처럼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문득, 다윈도 나처럼 친구가 없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서글퍼졌다. 

안 돼! 안될 일이다. 나는 혼자서도 잘 놀고 덜 외로워하는 법을 터득했지만, 내 작은 천둥벌거숭이에게는 '개로서 더불어 사는 행복과 우정'을 가르쳐주고 싶다. 남성으로서 누려야 할 사랑은 중성화로 빼앗지 않았던가. 




나랑 친구 할래? 


"강아지 커뮤니티 있잖아. 그거 가입하면 되지 않을까?" 

"'애카(애견 카페)' 한 번 가면 되는 거 아니야? 가보지 뭐." 

"동네 산책하면서 만나는 친구가 최고지! 일단 나가서 사귀어 달라고 하자!"  


우리나라 최대의 강아지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동네 친구들을 찾아보고 쪽지도 보냈지만 실패. 

 일단 '테리어'라는데서부터 보호자들의 걱정이 있었는데, '잭 러셀'에서 쐐기를 박았다. 테리어 종은 사냥 본능 탓에 주로 입으로 '와구와구'거리며 노는데_ 그렇지 않은 종을 키우는 보호자 눈엔 눈 돌아가서 '잘근잘근'물어뜯는 맹수처럼 보일 수 있다. 게다가 잭 러셀... 미쳐 날뛰는 하이퍼 텐션과 슈퍼 메가톤급 체력으로_ 친구 하기에 버겁기도 하고, 엄마 입장에서는 왠지 내 강아지 교육에 방해되는 '질 나쁜(?) 친구'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괜찮아요. 엄청 순둥이라서-" 


잘도 믿어주겠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반갑다고 턱까지 딱딱거리면서 친구 얼굴에 대뜸 주둥이를 들이대는데. 애써 평정심 유지하고 차분히 하던 말이나 끝맺으려는 내 앞에서_ 겁나서 피하려는 친구한테 구르고, 점프하고, 엉덩이까지 흔들며... 격정적으로 오해를 사는 다윈. 


 '내가 지금 널 대변해주고 있잖아... 그만!... 그만해...'   


친구 만들기 두 번째 시도. 

반려견 카페가 결코 강아지들의 사회성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들은 적은 있다. 

하긴, 잠시만 생각해보면_ 강아지들 입장에서 '애카'는 마치 '나이트'나 '클럽'같은 곳일 거다. 춤추러 온 사람, 부비부비 하는 사람, 취한 사람, 내일이 없는 듯 노는 사람, 남이 춤추는 걸 훔쳐보며 즐기는 사람... 

'클럽'에서 친구를 어떻게 사귀나. 연인 사이로 발전하기도 쉽지 않은데.

한 공간에 나이도 성향도, 신체적 역량도 모두 다른 다양한 강아지들이 있고, 간식도 주고 삑삑이도 던지고 사진도 찍는_ 온갖 소리와 냄새들로 흥이 폭발하는 곳. 쉼 없이 짖으며 노래하는 애, 춤추듯 달리고 뛰는 애, 주야장천 먹고 마시는 애, 무섭다고 숨어서 훔쳐보는 애, 등등이 뒤섞인 이곳에서, 다윈은 마치 EDM이라도 듣는 듯, 술 취한 듯 간식에 취해_ 놀다 죽겠다는 각오로 모든 강아지들에게 들이댄다. 

 그래서 누구 하나라도 응해주면 나으련만. 다짜고짜 다가가 킁킁대며 냄새 맡고, 뜬금없이 놀자고 구르고, 카밍 시그널로 '부비부비' 해대는 꼴이_ 내 스타일 아니라는데도 귀에다 시답잖은 말 속삭이면서, 눈치 없게 질척대는 찌질이 같다.   

 남편과 내가 차마 안쓰러워 아무리 불러봐도_ 클럽 초짜는 자신만의 그루브에 심취해 있다.   

   

가뜩이나 에너지 뻗치고 강아지든 사람이든 모두 좋아하는 다윈에게_ '애카'는 친구를 사귀는 곳이 아니었다. 정말 클럽처럼 기분 전환하고 싶을 때, 스트레스 풀고 오는 것일 뿐. 흥분 통제도 어렵고, 우리에 대한 집중력만 떨어지는 것 같다. 친구들 반응이 없자, 어느샌가부터는 이 집 저 집 간식 동냥을 다니며 남의 엄마 아빠 무릎에 손을 얹지 않나, 친구 사진 찍으려는데 끼어들지를 않나... 우리 부부는 연신 다른 집에 달려가 '죄송합니다!'를 외치고, 제정신이 아닌 다윈을 끌고 나오며 두 번째 전략도 포기했다. 


그리고 세 번째 시도. 산책하면서 동네 친구 만들기. 

우리는 어떻게든 사귀고 말겠다는 신념으로_ 친구를 찾아 밤낮으로 온 동네를 쏘다녔다, '친구를 노렸다'는 표현에 가까울 정도로. 다행히 우리 동네는 반려 인구 밀도가 높은 편이라, 산책을 하며 마주치는 강아지 친구들이 많았다. 마주치기만 하면, 내가 더 반갑게 다가가 인사를 시켰다. 

하지만 냄새 맡다가도 서로 관심이 없거나, 다윈만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냄새 맡으면서 인사하면 친구 되는 거 아니야?' 

'꼬리 흔들며 다가가 놓고, 금세 왜 시큰둥한 거야?' 

'그냥 사귀면 되지, 왜 이렇게까지 까다롭게 구는 거지?' 

나 정말 좋은 녀석인데_ 알아줄 친구 하나 없나... 




"너 같아. 너도 친구 사귀기 힘든 타입이잖아. 다윈이 우리보다 나은데 뭘? 다윈은 일단 다 좋아한다고." 


남편의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말에_ 기분이 상하지만 반박할 수 없다. 


"그래, 다윈은 나보다 훌륭한 친구지... 근데 강아지들한테 인기 없는 타입인가 봐."  

 

속으로 변명해본다. 

 나도 나름대로 의리 있는 친구였다고! 친구들이 그걸 몰라주는 것 같아서, 서운해서 소원해진 경우가 많았지. 그들의 고민도 들어주고 조언도 해주고, 괴롭고 슬플 때 항상 같이 있어줬는데_ 정작 내가 힘들 때는 내 옆에 없었잖아. 하지만 소심하고 회의적이었던 나는, 그 어떤 친구에게도 '너한테 서운해'라고 허심탄회한 진심 한 번 털어놓지 못했다. 자신이 없어서였을까. 그냥 혼자 화냈다가 섭섭해했다가_ '인간관계가 다 내 맘대로 되겠어?' 하고 포기했던 것 같다.  


생후 5개월 차 새끼 강아지가 집 밖에 나와, 난생처음으로 다른 강아지와 만났다. 인사하고, 자기소개를 하고_ 친해지자고 장난을 치는 서투른 몸짓을 한다. 아직 인사법도, 좋아하는 감정을 조절하는 것도, 상대방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도 몰라서, 퇴짜도 당하고 무시도 당하고_ 서로 더 알지 못한 채로 돌아서기도 한다. 그렇지만 다윈은 매 번, 항상 적극적이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며 열심히 꼬리를 흔들고_ 벌써 제일 소중한 친구라도 된 것처럼 열심히 좋아해 준다. 

 문득, 나는 내 친구들에게 어떤 인간이었을까 생각해본다. 저렇게 온몸으로 좋음을 표현하는데, 나는 몇 년이나 된 친구들에게도 내 속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나. 내가 힘들었을 때 내 옆에 없었다는 건-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며, 굳이 뭘 이야기하냐며_ 친구들에게 곁을 안 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맙다는 표현도, 잘 지내냐는 말도 잘 안 하는데_ 도리어 내가 '친구는 이래야 한다'는 괴팍함으로 점점 더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 돼버린 건 아닐까.  어쩌면 그들도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먼저 진심 한 번 터놓지 않을 만큼_ 친한 친구라 여기지 않는다고. 5개월 차 강아지만도 못한, 인간관계에 서투른 '어른이'다.     

 



"다윈 동배 있잖아. 첫 째 강아지 데려가신 분이 훈련사라고 들었잖아. 그분이 계신 곳이 우리 집 근처인데?" 


다윈의 친구 만들기 넋두리를 하던 중, 남편이 불현듯 떠올랐다며 건넨 말. 

형제끼리 재회도 하고, 보호자인 훈련사 분과 친구 문제로 조언도 들어보고!  다윈, 넌 참 복도 많구나. 


오랜만에 대학시절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게 먼저 연락했다.


'잘 지내지?... 야, 먼저 연락 못해서 미안해. 알지? 사랑한다!'


한참 후, 친구의 문자가 왔다. 


'됐고, 집에 놀러 와. 맥주나 하자.' 


오랜만에 만나면, 다윈처럼 온 마음을 다해 엉덩이를 흔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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