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개미의 큰 발걸음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한 걸음 내딜 힘만 있으면 된다.

by 다윈이야기

개미 같은 자여.


밖을 나설 때마다 '배가 본드'가 떠올랐다.

아, 개미 같은 나여.

부지런히 걷고 걷는 나는, 방향을 잃고 잘못 든 길을 헤매는 나에게는_

고작 장을 보러 마트로 향하는 것도, 밝아 든 아침을 맞는 모닝커피 한 잔도 큰 맘먹고 단행해야 할_

멀고 먼 여정이었다.

골목길마다 편의점이 있고 건너편마다 카페가 보이는,

그 어딜 가려도 버스로 지하철로 택시로_

빠르게 더 빨리, 더 짧은 동선으로, 제일 효율적으로_

그런 곳과 시간에 익숙해진 나에게

퍼스 시내에서 꽤 멀리 떨어진 한적한 이 곳의 하늘과 땅이 만나 활짝 펼쳐진 지평선, 어디까지 든 가보라는 쫙 뻗은 길들, 영원히 펼쳐질 듯한 광활한 대지는_ 천적이 없어 더 심심한 야생의 세계처럼 보였다.

IMG_7164.JPG 퍼스의 봄. 끝도 없는 펼쳐진 벌판에 카놀라 꽃이 만개했다.


잘못 들어 버린 길에서 뜬금없이 마주친 공원 덕분에 잠시 앉아 쉬었다.

길게 흐르는 개울 건너 누군가 정성 들여 가꿔 놓은 꽃밭에는_

고루고루 예쁜 꽃잎 색들이 물들어 있고,

부쩍 내리쬐는 해에 한 껏 더 말갛게 푸르러진 잔디가 또 아득하게도 펼쳐져 있었다.

짙은 편안함을 주는 보랏빛 라벤더 향기를, 자연히 명상하듯 찬찬히_ 더 깊은숨으로 한 껏 들이마셔본다.


"처음 여기 와서 드라이브를 하는데 산봉우리 하나 없이 속 시원하게 트인 평야를 보니까,

눈물이 흐르데요. 나 왜 이러니, 촌년처럼 청승맞게 하면서도_ 가슴속 답답함, 마음속에 응어리 같은 게 싹 씻겨 내려가면서- 속이 다 후련했어요.

그렇게 묵묵한 땅을 한참을 바라보고 나니까, 다시 해보자는 용기 같은 게_ 잘되고 말고를 떠나서_ 난 괜찮을 거라는 편안함이 생기더라고요."


이혼 후, 모든 걸 정리하고 죽을 마음으로 다시 살아보겠다고 퍼스 땅을 밟았다던_ 숙소 아주머니의 말씀이 생각났다.

가슴속 깊이까지 스며든 라벤더 향기 덕분인지, 마침 바뀐 상쾌한 음악 덕분인지_

먼지 같은 나를 한계 짓는다고 생각했던 이 너른 땅을 마음껏 쏘다녀 보고 싶어 졌다.


탐험가의 정신으로, 모험가의 자세로 많이 보고 깊이 느끼며-

저 지평선 너머, 더 넘어 머나먼 곳까지도 가 보자.


잔디를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길을 나선다.


타박타박, 타박. 개미가 길을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헤어짐은 결국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