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일, 신나게 달려 보자!
붙는 상대는 무조건 K.O패 시키는 전설의 프로레슬러, 우아하게 표독한_ 고양이들의 여왕, 계일 킴.
내 생에 첫 차를, '계일'이라 부르기로 했다.
다른 쪽 운전석에 앉아 다른 쪽을 보며 나아간다.
길도 익숙지 않은 초보운전자의 첫 드라이브에, 반대쪽으로 반대쪽으로 향해가는 내내 조마조마하다.
중년이 된 중고, 계일의 끙끙대는 힘겨운 엔진 소리에,
차에 일자무식인 나는 식은땀만 흘렸다.
눈에 띄는 카페마다 차를 세우고 들어가 이력서를 돌렸다.
이 곳에서는 직접 찾아가 이력서를 내밀고, 나를 대면으로 소개하면서 일을 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란다.
아니,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정말 모든 것이 내 상상 너머에 있다.
연극을 하며 틈틈이, 카페에서 일을 했었다.
아침부터 한낮까지만 여는 카페. 오후부터 저녁까지 공연 연습이 있었던 나에게는 딱이었다.
제대로 된 간판도 하나 없이, 누군가 일부러 숨겨놓은 듯한 공간을 찾아 내려가면 보이는 옛 사무실 철문_
그 문을 열면 마치 향수처럼 켜켜이 묵은 커피 향과 담배향, 방금 로스팅한 고소한 원두향, 바로 갈았을 때 터지는 상큼한 향이 어우러져_ 문 밖의 세상과 다른 공간, 다른 세상이 열리는 듯한 착각이 드는 곳이었다.
아득한 듯 잠연한 조명 밑, 새어 나오는 스페인 라디오 방송-
삐걱대는 나무 바닥이 인사하고, 나이 든 가구들의 얼굴이 지긋이 반겨주는 곳,
공간이 묵묵히 쌓아온 역사가, 생의 짙은 향기가 느껴지는 곳.
힙하고 모던한 분위기에 그루브 넘치는 음악, 예쁜 조명과 인테리어 소품, 화려한 디저트가 있는 그런 카페는_ 확실히 아니었다.
사장님은 차가운 듯 한없이 다정한 분이셨다.
무심하게 내뱉는 말속에, 상대방을 보살피는 마음이 들렸다.
'나는 부족하니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어.' 하시는 겸손한 분이셨다.
커피에 대해서는 요령 없고, 핑계 없는_ 곧디 곧은 장인 같은 분이었다.
아침 청소를 모두 끝내고 장사를 시작하기 전, 사장님은 항상 나에게_
온몸으로 향을 내는, 그날 제일 맛있는 원두를 골라 커피를 내려주시곤 했다.
보글부그르르 물이 끓는 소리,
투박한 그라인더에서 부스러지고 쪼개지는 콩들이 터뜨리는 새콤 고소한 단 내.
주둥이가 긴 주전자에서 흘러내리는 섬세한 물줄기가,
바스러진 원두와 만나 부풀어 오르는 미세한 거품 소리,
한 몸으로 젖어 들어 또로 록히 내리는 검갈색 한 잔.
마치 하나의 의식 같아서, 바라보는 마음까지 고요해지곤 했다.
그때가 새삼 처음이었던 것 같다.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정직한 행복,
기다리는 마음의 안온감과 맛있는 것을 나누는 것의 기쁨, 그 감동.
참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담담하고 무던한 일이 이렇게나 사람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니, 마음까지 향기로운 행복에 젖어들었다.
제일 처음 이력서를 냈던 카페 한 곳에서 한 번 보자는 연락이 왔다.
들뜬 마음에 반대로 달릴 뻔 했다.
어짜피 모든 게 반대인 곳. 낯선 만큼 재미있다.
이제부터 어디든 계일과 함께다. 든든한 동반자 하나를 얻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