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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백부부 Apr 28. 2021

개는 물지 않는다, 사람이 문다.

다윈에게 배우는- 괜찮은사람이 되는 법

"야, A 결혼한대!!" 


"진짜? 대박이네, 그렇게 결혼하고 싶다고 난리를 치더니만. 이제 남자 문제로 우리 괴롭히지는 않겠네!" 


"과연 그럴까? 이제는 남편 생겼다고 우리한테 부부 동반 모임 하자고 괴롭힐걸?" 


가만, 그러고 보니 그 A라는 친구, 나랑은 연락 안 한 지 꽤 됐는데? 내가 그렇게나 오랜 세월 동안 남자 문제, 정신적 문제로 괴로워할 때 항상 지지해주고 옆을 지켜줬는데... 심지어 결혼한다는 그 남자 문제로도 울고 불고 별 난리를 치면서 사람 질리게 괴롭혀놓고는_ 둘이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나한테 안 한 거야? 


옆에서 통화를 듣고 있던 남편이 말한다. 


"그럴 줄 알았어. 내가 몇 번이나 '그 여자'랑 연락하지도 말랬지? 너 그냥 이용만 당한 거잖아. 진짜 그런 인간은 진작에 손절하라니까."


배신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인간인 줄은 애초에 알았기 때문에. 

다만 그녀의 푸념과 징징거림을 견디며 위로하고 조언하고 내 시간들이 갑자기 복기되어 펼쳐진다. 


나는 또 이렇게_ '친구'라는 가면을 쓴 '마음 좀벌레'를 떠나보냈다.  

날아라, 다윈! 




나쁜 관계는 끊어내야 한다. 몇 번이고 남편이 경고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그래도 친구니까, 친구 사이에 그럴 수도 있겠지, 내가 이해해야지 하며 넘기고 참아왔다. 어쩌면 그녀를, 우리의 관계를 이런 식으로 이끌었던 것은 나 때문이었을 수도 있으리라. 


"너, 예전에 A. 기억 나? 걔가 너 결혼식에 초대 좀 해달래!" 


"내가 걔를 갑자기 왜 초대해? 나랑은 친하지도 않았는데." 


"이제라도 친해지고 싶대~ 나한테 니 결혼식 꼭 가고 싶다고 몇 번이나 전해 달래. 그리고 그전에 한 번 만나자고 하던데?" 


잘못된 재회였다. 대학 시절, 서로 안면만 있는 관계였고_ 대학 재학 시절부터 이미 서로의 연락처도 없었던 A라는 사람. 하지만 친구를 통해 갑자기 나의 결혼식에 초대해 달라는 부탁의 말을 했단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친구를 시켜 초대해 달라고 부탁해서 곤란하게 하는 것부터 무례한 짓이었지만, 난 솔직히 그녀의 존재에 대해 신경 쓸 만큼 정신적으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친구가 몇 번이나 부탁하기도 했기에 혹여 나중에 민망하게 얼굴을 붉히느니 그냥 초대하자는 생각으로- A와도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굉장히 고소득 연봉에, 즐겁고 화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나 원하는 것은 다 하고 살면서 돈에 목숨 건 듯한 근황 소개를 마치더니- 마치 본론은 따로 있다는 듯, 전남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상황은 뭐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나한테 이미 옛날에 바람나서 헤어진 전 남자 친구 이야기를 하는 걸까, 나는 바빠 죽겠는데 왜 이런 이야기나 듣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스며드는 순간_ 드디어 그녀가 왜 그토록 나를 보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친구가 너희 회사 옆 건물이거든. 요즘에 만나는 여자 있는지 한 번 알아봐 줄 수 있어?" 


뭐?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야? 단 한 번 연락하고 안부 물었던 적도 없이- 친하지도 않은 대학 동기를 만나서, 게다가 결혼을 앞두고 정신도 없는 통에_ 나한테 전남친 근황이나 캐보라는 거야? 

하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이야기를 해서, 나는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아 그래? 응, 지금은 내가 경황이 없어서... 나중에 아는 거 생기면 연락해줄게."  

    

내 나름대로 완곡한 거절의 의미였지만, 더 분명히 선을 그었어야 했는데... 

어쨌든, 그렇게 그녀와의 관계가 시작됐다. 



"이거, 신상이라서 샀어! 예쁘지?! 이것도 사려고 하는데 한 번 봐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돼? 어제도 전남친한테 연락 왔어. 그냥 다시 만날까?" 


시시때때로 온갖 명품 브랜드 가방과 옷 사진을 캡처해서 자랑하는 그녀. 나와 A의 관계를 연결시킨 내 친구는- '걔 원래 그렇다'며 신경 쓰지 말라는 듯했다. 대학시절부터 A와 친했었다는 그도, A를 좋은 친구관계로서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쟤는 재밌어' 정도의 '가십걸'을 보듯 대하는 관계랄까. 그 이야기를 들으니 10여 년 정도나 가까이 지낸 친구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는 A가 안타깝기도 했다. 그러나_ 그 생각은 나의 미욱한 동정이자 오지랖이었다.   


"이렇게 예쁘고 멋진 여자랑 결혼하면서- 집은 해오시는 거죠?" 


"우리 XX한테 서울에 있는 집 하나랑 차 한 대, 명품백 몇 개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오빠, 차 뭐예요? 아, 국산. 소박하시네요?!"


친구 둘이서 각자 자신의 남자 친구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A는 '내 친구들은 소중하다'며_ 친구들의 남자 친구에게 술기운을 빌어 이런 천박한 소리를 지껄였다. 그 날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훗날 그 자리에서 테러를 당한 남자 친구 2명은, 현재 내 친구들의 남편들이 되어- 아직도 A 접근 금지령을 풀지 않고 있다.    


이 정도는 깜찍한 애교고, 더 읊조릴 수많은 일들이 많지만_ 나의 평안을 위해 생략하고 싶다. 다 차치하고서라도 나에게 그녀가 끼친 만행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녀의 정신병적인 연애담 공유다. 오랫동안 붙잡았던 헤어진 전 남자 친구부터, 친구의 남자 친구와 바람이 났던 이야기 등등... 그녀는 자신의 모든 불안정하고 비정상적인 연애관계를 나에게 털어놓았다. 내가 듣고 싶든, 아니든- 내 시간이 어떻든 전혀 미안하거나 민망한 기색도 없이. 다른 친구들은 너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욕하는데, 나는 안 그렇다나. 

 그녀는 '네가 정말 소중한 친구야'라는 말을 나에게 반복하며_ 낮이건 밤이건 자신을 위로해 달라고 나를 괴롭혔다. 심지어 우리 부부가 해외에서 지냈던 때가 있었는데, 시차가 거의 없다고 생각도 없이 전화를 걸어댔다. 남편은 통화하고 있는 나를 볼 때마다 답답하다며 화를 낸 적도 있다. 


"안됐잖아. 가정 사적인 아픔도 크고, 남자 친구도 바람 나서 떠나니까- 본인도 정상적인 연애가 힘든 것 같대. 나한테 털어놓으면 살 것 같다는데 어떡해."     


"... 네가 더 안됐다! 이건 뭐 가스 라이팅도 아니고. 에휴, 난 모르겠다, 정말. 앞으로 그 여자 이야기 나한테 하지 마."


난 절대로 착한 사람이 아닌데_ 이 당시는 내가 뭐에 홀렸던 걸까. 나는 왜 그녀를 끊어버리지 못하고 끌려다녔을까. 불쌍해서? 안타까워서? 재밌는 친구라 생각해서? 아니다, '나쁜 사람이 되기 싫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단지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하고 힘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그녀의 '넌 정말 최고야. 내 진짜 친구는 너뿐이야.'라는 말과 함께_ 만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친구가 될 필요가 없다는 남편 녀석의 말이 맞았다. 이런 게 가스 라이팅이지, 별 게 아니다. 



"너한테는 연락 안 했어? 나한테 무슨 투자할 것 있으면 A가 정보도 알려주고, 같이 투자하기도 하는데."


"너한테는 아무 말 안 했구나. 같이 여행 갔었는데."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하소연, 슬픔, 고민만 털어놓고는 전화를 끊었고, 좋은 일로 연락하는 것은 호화로운 쇼핑 자랑과 사치스러운 여행 자랑뿐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친구를 가려가며- 필요에 따라 구미에 따라 관계를 맺고 있었다. A에게 나는, 다른 친구처럼 호화롭고 값비싼 이벤트를 함께하자고 연락할만한 친구 목록에는 없었나 보다. 문득, 내가 고민이 있고 힘들 때 A가 들어준 적이 있었는가를 떠올려 봤다. 단 한순간도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되자- 그녀에 대한 내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서히 멀어져 갔다. 



그리고 나는 A가 결혼한다는 친구의 전화를 끊으며_ 나는 온전히 마음을 정리했다. 남편이 다윈과 터그 놀이를 하며 한 소리 더 곁들인다.  


"다윈은 이제 친구 잘 사귀는데. 다윈이가 더 쿨하고 멋져, 그치?!" 


... 그래, 맞다. 개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것처럼- 사람도 관계를 맺는다면 인생은 훨씬 쿨하고, 진실할텐데!   


다윈&쫄구. 첫 만남에 서로 줄기차게 뛰어 노는 친구가 되었다.

개는 얼마나 훌륭한가. 냄새만으로 서로를 단박에 파악해서 나랑 맞는 친구인지 아닌지를 파악한다. 서로의 환심을 사려는 값비싼 선물이나 허풍 섞인 돈 자랑, 내 인생과 상관없는 내 친인척 자랑이나 과거의 영광을 늘어놓을 필요도 없다. 서로 맨 몸으로 당당하게, 인사랍시고 서로 엉덩이 냄새를 맡으며_ 굉장히 개인적이고 긴밀한(?) 사항을 만나자마자 바로 공개하지 않는가! '자, 이게 나야! 어때? 친구할까?' 때로는 이런 즉물적인 단순함이 진정성과 진실함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그 뿐이랴. 신나게 놀다가도 지치거나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에는 차갑게 뒤돌아서고, 다시 만나면 세상에서 제일 보고 싶었던 존재인 듯 반갑게 맞이해준다. 무리를 지어 놀다가 새로운 친구가 오면 경계하고 짖다가도, 또 세상 쿨하게 무리로 인정해주고 쉽게 잘 어울린다. 


다윈과 동네 강아지 친구들이 운동장에 모여 놀고 있었을 때다. 나와 다른 보호자분들 모두 서로 자유롭게 뛰어 놀도록 하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저 멀리에서, 보호자와 길을 지나는 강아지가 있었다. 역시나 다윈은 반가운 마음에 뛰어가려 했고, 나는 다윈을 불러 세우려 했다. 그러나 결국, 기어코 뛰어가는 다윈. 그런데 이 때, 다윈을 지켜보던 5살 된 친구, 펩시가 다윈에게 달려가 마구 꾸짖는 듯이 짖어댔다. '너 왜 엄마말 안들어! 정해진 곳에서만 놀기로 했잖아!' 하는 듯이 말이다. 


"아이구, 다윈이 혼나네~ 제대로 교육시키네, 펩시가!" 


펩시의 보호자분이 나에게 미안하다는 듯, 말씀하셨다. 


"와, 펩시! 너무 멋있다! 고마워! 저 녀석이, 제 말은 안듣는데 펩시 말은 잘 듣네요!" 


제대로 혼나고서야 터덜터덜 내 앞으로 돌아온 다윈.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4살 빌리라는 친구도 혼쭐을 내며 거든다. 다윈, 무단 자리 이탈로 누나와 형에게 제대로 훈육 받았다. 나이가 많은 개들은 어린 강아지들의 버릇없고 경우 없음을 지적하고 꾸짖으며- 매너와 경우에 맞는 예절을 가르쳐준다. 그러면 그 순간은 풀 죽어 침울해 하다가도, 금세 잘못을 인정하고 같이 또 신나게 논다. 이보다 더 훌륭한 관계가 있을까.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수많은 말로 생채기를 내어 본질을 그르치기도 하고, 또 쓸데없는 자존심과 앙금으로- 관계 자체를 끊어버리기도 하는데 말이다. 한껏 귀를 내리고 내 뒤에 숨어 가만히 앉아 있던 다윈은, 금세 또 풀려서 친구들과 공놀이를 한다. 펩시도 빌리도, 다윈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철부지 동생 다윈을 받아주며 운동장을 내달렸다.     


다윈은 딱히 싫어하는 친구가 없고, 여태껏 지켜본 결과- 다른 친구에게 맞춰주고 참아주는 편이다. 설령 자신의 공을 낚아채거나, 이제부터 내 거라고 빼앗아 가도, 다윈은 그냥 줘 버린다. 처음에는 그렇게 착하게 다 참고 뺏기는 다윈을 걱정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윈이 참 현명하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을 향해 뜬금없이 짖고 화내거나, 공을 뺏으면- 다윈은 맞서 싸울 필요도 없이 인정하고 결국 자리를 뜨기 때문이다. 그것이 '너랑 친구 안 할 거야!'의 표현이든, 아니면 무시의 행동이 든 간에- 다윈은 진심과 애정을 다해 배려해주고, 통하지 않는다 싶으면 놓아버릴 줄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는 불평하지 않는다. 개는 참 훌륭하다.    

아무 것도 재고 따지는 것 없이, 꾸밈 없이_ 서로에게 그저 즐거움이 되어주는 강아지들. 이들의 우정이 부럽다.  

"안녕! 잘 지냈어? 나 결혼해! 축하해줘!" 


하긴, 그녀가 연락을 아예 안 할리는 없다. 듣자 하니 또 연예인 결혼식처럼- 무조건 호텔에서, 꽃밭으로 꾸미고, 최고가 드레스를 맞추고- 성형에, 지방흡입에... 평생을 걸고 결혼식 자랑을 하고 싶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짧게, '축하해! 예쁘게, 행복하게 잘 살자고!' 라고 답했다.   


그녀의 결혼식에는 가지 않았다. 애초에 우리의 관계를 엮어주었던 친구에게 축의금을 전달하니- 수미상관의 관계 매듭을 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예전에 그녀를 몰랐을 때처럼,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내 마음과 함께_ 그녀의 번호도 날려 보냈다. 어차피 그녀도 나도, 살면서 서로에게 다시 연락할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나는 친구가 아니라 그녀의 '부정적 감정 해소' 용도였으니_ 더 이상은 내가 필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행복하고 평화로운 결혼 생활을 빌며, 멀리서나마 응원해주고 싶다. 

이 결혼생활마저 삐걱댄다면-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나를 찾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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