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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Apr 13. 2021

검둥이, 누렁이, 흰둥이

모든 생명은 아름다운걸요!

"안녕~! 인사해~ 아직 아기인가 보네. 잠깐만! 얘 믹스예요?" 


다윈의 아가 시절, 조용히 산책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나 아기 다윈을 귀엽다고 호들갑을 떨더니만, 

문득 자기 강아지와 인사시키려던 다윈이 믹스견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모양이었다.  


"네, 믹스예요."


어차피 '잭 러셀 테리어예요'라고 해도 모를 사람 같았다. 

그리고 잭 러셀은 화이트 잉글리시 테리어 + 폭스테리어 + 보더테리어 등을 교배시킨 개량종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믹스지 뭐.   


그 보호자는 믹스가 맞다는 무신경한 내 말에 입가에 띈 미소를 거두더니, 반갑다며 인사를 나누려던 자기 강아지를 들쳐 안고는 홱 돌아서 가버렸다. 

그때는 코로나 시국이 일어나기 전이었던지라, 자신의 얼굴에 번지는 마음의 천박함이 적나라하게 보였음에도_ '어디 믹스견을 우리 애랑 어울리게 해?!' 하는 듯한 당당한 태도였다. 


견생 7개월 차였던 다윈에게 차마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저 이 상황이 이상한 것 같다는 낌새를 느꼈는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_ 말간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 속에 내가 비쳐서_ 바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새까맣고 믹스라고, 산책만 나가면 사람들이 저리 가라, 무섭다 그러면서 뭐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사람을 엄청 싫어했어요." 


세상에, 이렇게나 예쁘게 눈인사하면서 만져달라고 요리조리 몸을 부비는 사랑스러운 강아지는 처음 봤다. 지구에서 단 하나뿐인 이 특별한 친구는, 한 때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을 향해 냉대와 멸시의 조롱을 퍼붓는 사람들 때문에_ 사람이 다가오는 것도, 만지는 것도 거부했었다고 한다. 다행히 마음을 주고 다정하게 대해주는 이 동네 사람들 덕분에_ 좋은 경험들을 많이 하면서, 스스로 다가와 애교도 부릴 만큼 성격이 좋아졌단다. 

참 다행이다, 그리고 고맙다. 못난 인간들을 용서해 주어서. 


"소주 안주로 딱이겠네."


"저런 건 짐승이야, 개가 아니고."


"진돗개 보호자들, 총으로 쏴 죽이고 싶다"  


평생 차별의 핍박과 학대를 당하는 견종 일등은 단연 진돗개일 것이다. 그 많던 우리의 개, 진돗개는 다 어디로 갔을까. 길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추잡스럽고 상스러운 언행들을 다채롭게 쏟아내니, 진돗개 견주들은 언제나 산뜻한 마음으로 문을 나섰다가_ 온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다. 사람도 피하고 강아지도 피하고_ 마치 '잠재적 범죄자'라도 된 것처럼 열심히 숨어 다녀야 한다. '천연기념물'이라고 전 국가적으로 추앙해 놓고는, '테마 파크'나 만들어 썰매나 끌게 하고, 악력 체험으로 '진돗개는 세게 뭅니다'라고 웃고 떠들어대는 것은 어느 시대의 몹쓸 유물인가. 순수 혈통이 아니면 '진도개'가 아닌, '진돗개', 혹은 '똥개'가 되어_ 진도에서 퇴출 당해 유기견 보호소로, 도살장으로, 개농장으로 간다. 유기견 보호소에서야 유난히 많은 우리 진돗개들은 '물고 사나워서'라는 편견으로 따뜻한 손길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안락사 대상 일순위 개가 되었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검둥이 누렁이 흰둥이, 그리고 얼룩이까지- 순종이 어떻고 믹스가 어떻고... 뭘 그렇게 따지고 차별하는지, 인간은 참 돼먹지 못한 짐승이란 생각이 든다. 

 개들도 그럴까? 자기 보호자가 흑인, 아시아인이어서, 백인이어서 싫기도 하고 좋기도 할까? 친구 강아지 엄마 아빠가 흑인이면 무섭고, 아시아인이면 원숭이 같아서 피하고 싶고, 백인이어야 같이 놀고_ 혼혈이면 갸우뚱할까? 

 생전에 우리 할머니가 자주 하셨던 최대의 욕이 '개만도 못한 인간'이었는데, 생각해보니 본래 인간이 개만도 못한 게 맞는 것 같다는_ 자조감에 젖어든다.       


자연과 사람, 반려견이 상생하는 공간! 


'국내 최초 프리미엄 반려 가족 리조트'라는 이 곳의 거창하고 화려한 마케팅 문구 아래에는_ 숨겨진 정책이 있었다. 동물 보호법상 맹견류와 진돗개, 풍산개, 그리고 믹스견은 이용 제한이 있다는 것. 진돗개와 풍산개의 믹스견 또한 포함인지라 입장이 불가능하다. 

왜?

유사시, 현장 인력이 제어와 통제가 어려울 수 있어서라고 했다. 진돗개, 풍산개, 그들의 믹스견이 이용하기 위해서는 성향 검증 레슨을 받고 교육확인서를 받아야 한다는_ 구구절절하고 창의적인 방법도 제시했다. 

그래, 현장 인력이 모두 전문 훈련사가 아닐 수도 있다. 문제 발생 시, 덩치가 큰 친구들을 물리적으로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_ 정말 순수하게, 육체적 한계가 있을 테니까... 그만큼 '프리미엄'한 곳은 아니기에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다른 개들은 성향 검증이 필요 없는 것일까? 논리도 없이 따져댈 바에야_ 모두가 안전하게, 안심하고 즐기기 위해서 다 같이 성향 검증 레슨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펫 미용실에서도, 강아지 운동장이나 반려견 동반 카페에서도_ 견종 차별은 있다. 믹스견은 무슨 별난 관리를 해주기에 추가 요금을 받는지, 설명하는 업체 대표 본인도 자가당착에 횡설수설해대니_ 듣기조차 민망할 지경이다. 차라리 대놓고 '제 취향입니다. 믹스견은 싫어요.'라고 하면, 솔직해서 속이나 시원하겠구먼. 

이렇게 비 반려인뿐만이 아니라 관련 업계에서조차 견종 차별을 한다니_ 개들에게 도무지 면목이 없다. 

 허울뿐인 마케팅 문구가 아니라, 진실로 '자연과 사람, 반려견이 상생하는 공간'은 언제쯤 이루어질까. 


미국에서 최근 아시아인 혐오 범죄들이 연달아 일어나면서_ 거리 시위를 하고, 너도 나도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는 모습이 보인다. 인종 차별과 흑인 혐오, 아시아인 혐오 범죄는 오랫동안 있어 왔다. 다만 우리는 문제를 문제라고 당연하게 이야기하고, 옳게 행동하라는 바른 이야기조차 꺼낼 수 없을 정도로_ 힘이 없었다.

 오스카 시상식에 초대받은 윤여정 선생님마저_ 아시아인 증오 범죄로 경호원을 고용해야 할 지경이다. 



이제라도 당당하게 소리를 내고 거리에 나설 수 있음에 감사하며_ 

부디 우리 세대를 끝으로 인종 차별 문제가 영영 사라지기를 바란다. 수많은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아프고 고통받아 왔다. 다음 세대에까지 이런 야만적인 세상을 전해줄 수 없다. 지금부터가 아니면 안 된다.     


생명에 깊이와 무게가 다를까.  

자연은 분별이 없다. 그저 생긴 대로, 흘러가는 대로_ 유난스럽게 굴지도, 차별을 하지도 않는다. 다 나름의 이유와 가치가 있기 때문에 동등하게 존재하고, 존중받는다. 그걸 모르는 인간만이 구분하고 분리하고, 차별을 일삼는다. 


인종 차별에 분노하자. 

그리고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어느새 무감각해진 다른 차별 문제에도 감수성을 키우자. 

우리부터, 지금부터, 그리고 작은 것에서부터_ 바로잡아 보자. 

다음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은 너무 거창할 수도 있다.

당장에 내일부터, 내가 마주할 세상의 상생을 위해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모두가 같은 햇살을 받으며 웃는다. 품종과 출신, 혈통, 모색과 상관없이_ 그저 동등한 행복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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