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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Apr 12. 2021

새 봄엔 새 옷, 새터래기

털갈이의 계절 봄. 우리 집 '털' 비상 계엄령을 선포한다!

"내일 일정 다 비우는 거, 알지?"


"... 벌써 그 날이구나. 다윈, 봄이니까 이번엔 제대로 해보자!"   


우리 집은 주말이 더 바쁘다. 워낙 털털한 다윈의 털들 때문에, 하루에도 두어 번 작은 청소기로 곳곳을 훔쳐내지만 도대체 얼마나 더 털을 뽑아낼 기세인지 온 집안에 소복소복 털눈이 내린다. 매주 토요일, 대청소의 날로 정해서 구석구석까지 꼼꼼히 다 털어내지 않으면 침대, 소파에, 옷에_ 우리의 눈과 코, 입으로_ 다윈을 느껴야 한다. 

  

오늘은 더 특별한 주말이다. 이주마다 한 번씩 하는 다윈의 미용 날! 

가위로 잘라내는 일반적인 견종과는 달리, 테리어 종은 '스트리핑 나이프'로 죽은 털을 뽑아내면서 숱을 치는 스트리핑 방식이다. 작은 나이프로 조금씩 조금씩 털을 솎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중노동인지... 테리어 미용을 하는 전문 미용실이 거의 없기도 하고, 가위컷보다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려 가격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다윈은 항상 우리 둘이 셀프 미용을 시켜준다. 대청소와 다윈의 미용까지 마치고 나면, 우리 부부의 토요일은 싹둑. 잘려 나간다. 

복슬복슬 털북숭이 시기. 이대로 놔두면 온 집안이 털과 전쟁을 해야 한다. 




다윈 본가인 켄넬에서 배넷 미용을 받으면서, 스트리핑 미용 강의를 몇 번 듣기도 했다. 몇 번이고 보고 들어도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이제는 모르는 대로, '야매'스러운 대로_ 하나의 스타일이 되었다. 언제든 편히 와서 맡기라는 감사한 말씀에도 얼마나 고된 노동인 줄 알기 때문에 속 없이 '부탁드립니다~!' 할 수 없다. 

 각 부분마다 털이 난 방향과 결대로 뽑아내고, 겉 털은 겉 털대로, 안에 있는 솜털은 솜털대로 다른 종류의 나이프를 동원해가며 솎아내야 한다. 그리고는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얼굴이나 엉덩이, 꼬리 부분엔 가위컷까지 곁들이니_ 옆에서 하시는 걸 지켜보기만 해도 겸연쩍기 짝이 없다. 


다 모르겠다! 그냥 가위로 깍둑깍둑 잘라버리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다. 


"스트리핑을 해야 모량도 풍성해지고 건강해요. 테리어는 땅 파고, 굴로 들어가서 사냥하는 종이라- 더러워지고 약해진 털들이 빠지면서 새 털을 계속 만들어내잖아요. 근데 도시에서 살면 그렇게 놔둘 수 없으니까, 자연스러운 습성에 맞는 방식으로 미용을 하는 거죠."


"어떤 분들은 가위 미용으로도 하시고, 여름에는 빡빡 밀어버리시던데_ 그렇게 해도 될까요?" 


역시, 남편도 나랑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가위 미용은 안될 건 없지만 피부랑 털이 안 좋아져요. 모질도 얇아지고 꼬불꼬불해지고_ 확실히 안 예쁘기도 하고요. 덥다고 빡빡 미는 건 화상도 입고 피부병도 생겨서 안 하시는 게 좋아요." 


다윈의 배냇 미용 날. 따끔거리고 답답해서 마냥 싫었다가_ 결국 몸을 내맡기는 다윈이다. 


이상적인 스트리핑은 2~3주에 한 번, 솜털이나 잔털은 2~3일에 한 번씩 정리해주면 좋단다. 평소에도 수시로 손으로라도 뽑아주면 미용할 때 훨씬 빨리 끝낼 수 있겠지만_ 우리는 대청소하듯, 한 번에 몰아서 하는 것으로 정했다.  


남편과 나는 미용 아이템을 구비했다. 전문가용은 아직 부담스러운 상황이니 최소한만 갖췄다. 미용 테이블도 십만 원이 훌쩍 넘어_ 집에 있던 간이 테이블에 실리콘 매트를 깔고, 몸을 고정시키는 부분만 따로 구매했다.  

 처음에는 우리 스스로도 얼마나 끈기 있게 미용을 계속해줄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셀프 미용을 마음먹었다던 다윈 동배 보호자분들도, 전문가용 도구들을 풀세트로 갖추고 인증까지 하시며 즐거워하던 다른 보호자 분도_ 어느새 하나 둘... 포기하고 떠나가셨기 때문이다. 어느새 헤비메탈 가수처럼 장발이 되거나, 군인처럼 빡빡 밀고 나타난 강아지 친구들을 보며_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테리어 미용 전문샵'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남편은 털을 뽑고, 나는 다윈에게 간식을 대령한다. 

다윈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잔잔하게 즐거운 레게음악 리믹스도 틀고, 다윈이 특히 좋아하는 고구마와 말린 소 간까지 준비했다.     


고객님, 예쁘게 금방 끝내 드릴게요~! 협조 좀 해 주세요! 


뽑힌 털들이 우리의 얼굴과 온몸에 달라붙는다. 하기 싫고 귀찮다고, 온몸을 숨기고 비틀어대는 다윈에게 간식 조공을 바쳐가며 '한 번 만 더~!'를 구걸한다. 

이 녀석아, 털 먹어가며 몇 시간이고 서 있는 우리가 더 고생이라고!!  

 엉덩이 부분은 원래 예민하기도 하고, 따갑기도 해서 더 저항이 심하다. 빨리 끝내야 서로 편하기에, 정신없이 뜯다 보면_ 어느새 동그랗게 땜통이 생긴다. 


"다윈, 미안해... 네가 계속 움직이니까 그렇지~!... 금방 기르니까 괜찮을 거야!"

 

둠칫 두둠칫. 흐르는 비트에, 받아먹는 간식에 몸을 맡기는 다윈. 아예 포기하고 엎드려 버린다.  

두세 시간 동안 레게음악을 들으니 피곤한 듯 흥겨운 몸. 우리도 점점 더 이상해진다.


"그만 하자. 하다 보면 계속 부족한 부분만 보이니까 끝이 없어. 다음 주에 또 하지 뭐." 


남편 녀석. 마음만은 이미 전문 미용사가 되셨다. 

다음 주에 이 짓을 또 할 수는 없다! 이 정도면 괜찮으니까_ 나는 빨리 마무리하고 끝내고 싶다. 

꼬리 끝과 배, 얼굴에 있는 잔털 부분 마무리는 내 담당이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마치고 나면_ 정말 진이 다 빠진다.  

 

"자, 다윈! 끝났어! 수고했어!!" 


"이제 목욕해야지?!"  


육아는 정말 끝이 없구나. 

퇴근하고 싶다... 

'다윈네 야매 미용실' 최근 사진. 이 날 다윈은 털 100g을 잃고, 우리는 몸살을 얻었다.



"다윈맘, 이번에 다윈이 미용할 때 놀러 가서 봐도 돼요?"


"다른 데는 감을 좀 잡았는데, 귀 부분은 어떻게 뽑아야 돼요?"


"이건 완전 칼 같이 생겼네요? 우리는 빗질을 해주는데, 빗질만으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어느샌가부터_ 주변에 테리어들을 보면 짧은 미용 지식을 쏟아내는 나. 이렇게나마 개육아 선배들에게 그동안 받기만 했던 도움을 줄 수 있다니 다행이다. '다윈네 야매 미용실'을 열어 항상 미용 때문에 고민이었다던 친구 강아지 털을 솎아주기도 하고, 아예 스트리핑 나이프를 들고 산책길에 만난 친구의 털을 다듬어주기도 한다.     


"이게 은근히 블루 오션이야. 테리어 미용으로 투잡 해볼까?" 


귀찮고 힘들다던 남편이_ 이렇게 꾸준히 미용을 해주니 참 대견하다. 

목욕까지 마치고, 뽀송뽀송 뽀얗게 예쁜 내 강아지를 보니, 시간과 몸 고생이 씻은 듯 보상받는 기분이다. 

후두둑! 하고 물기를 털어내더니, 개운한 몸과 기분으로 공을 물어다 내 앞에 놓는 다윈. 


"아니야! 퇴근이야, 난 퇴근했어!!!"


우리 가족의 이번 주말도 이렇게_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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