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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Apr 09. 2021

너무 배우면 바보가 돼요.

개 육아에도 과유불급이 있답니다.

가끔 유튜브를 보면 천재견들이 많이 나온다. 아빠가 세수를 하니 수건을 갖다 주고, 바구니를 물고 슈퍼에 가서 라면을 사고 거스름돈까지 받아오는 개, 드넓은 밭에서 봄동을 찾아 뽑아오는 개, 보호자와 젠가 놀이를 하는 개까지... 어쩜 이렇게도 말을 잘 알아듣는지- 길고 긴 세월, 인간과 공존하기 위해 '인간 맞춤형'으로 진화했다는 개들의 교감능력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와, 진짜 신기하다! 다윈! 우리도 한 번 해볼까?"


처음엔 함께 노는 게 그저 재밌어서 시작한 다윈의 개인기 훈련. 

앉고, 엎드리고, 기다리는 것을 지나 악수와 인사까지 마스터했다. 비가 오는 날, 미세 먼지가 심한 날, 그리고 아무리 놀아도 체력이 넘쳤던 날_ 가끔 시켜봤더니 곧 잘 해내기에, 은근히 '우리 개 천재인가 봐!' 하는 기대감마저 생겼다.   

 '저 친구들도 하는데, 우리 애는 왜 못하겠어?' 하며 이것저것 시키다 보니, 이제는 함께 눈을 보고 교감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하지만 어림없다.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즐거워할 줄 아는 개들과는 달리, 어리석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세상에는 신기하고 멋진 개인기들을 척척 해내는 친구들이 많은걸! 오늘도 나는 유튜브에 개인기 훈련법을 검색한다. 

뭐라고? 개인기 연습하자고? 


"요즘 들어 다윈이가 생각을 잘 안 하려고 해요. 1살 전에는 눈을 반짝거리면서 바로바로 해냈는데, 이제는 뭘 시켜도 시큰둥하고 갸우뚱하고... 강아지들은 보통 몇 살 때까지 새로운 걸 배울 수 있나요?" 


주변 개 육아 선배들과 다윈의 동배 형을 반려하고 있는 훈련사분께 폭풍 질문을 던져본다. 한동안 산책만 하고 훈련을 하지 않다가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인지, 아니면 이제 성견이 되어 골치 아픈 게 싫어진 건지, 그것도 아니면 개춘기가 다시 온 것인지_ 알면 알수록 개 육아는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훈련 시간이 너무 긴 것 아닐까요?" 


"아니요, 하루에 5분씩 두 번 정도? 어차피 집중력이 짧아서 오래 해도 소용없더라고요." 


"너무 배가 불러도, 배가 고파도 집중력이 안 좋아져서 훈련하기 좋지 않아요." 


"그런 것 같기는 해요. 배 고프면 흥분해서 잘 못 알아듣고, 배 부르면 다 귀찮아해서 못 알아듣더라고요."  


"훈련은 어디까지나 놀이여야 해요. 훈련이 잘 안된다 싶으면_ 성공하게 도움을 주고, 무한 칭찬을 해줘야 신이 나서 더 잘해요." 


"네. 그렇게 하고 있는데_ 항상 하던 식으로 똑같이 하는데도, 어느샌가부터 갑자기 이러는 것 같아서..." 


"너무 원하는 대로 다 해줘도 습득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어요. 강아지들이랑 실컷 놀고, 다윈이가 좋아하는 노즈 워크도 하고, 운동도 하니까_ 생각하고 집중하는 시간이 지루한 거죠. 다양하게 많은 것들을 시키는 것도 좋지 않거든요. 흥분도만 높이는 놀이나 친구들과 뛰어노는 산책은 좀 줄이고, 차분하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떤 보호자님은 매일 운동이나 어질리티 수업을 들으셨는데, 도리어 능률이 더 떨어지더라고요. 한동안 좀 쉬었다가 오니까, 더 재밌게 신나 하면서 잘 배우더라고요. 강아지들에게 모든 걸 다 해주고, 열심히 시킨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건 아니에요."   


다윈이 좋아하는 대로 놀이와 공부를 너무 열심히 시킨 것 같다는 훈련사 분의 조언이다. 엥? 내가 그토록 부족함 없이 다 잘해줬다고? 그럴 리가... 하루 두 번 산책에, 요즘은 나의 게으름으로 며칠에 한 번 정도 개인기 훈련을 할 뿐인데... 

 사실 나의 열성적인 교육열보다, 감사하게도 집 앞 산책만 나가면 신나게 놀아주는 좋은 친구들이 있어 주어_ 매일매일이 신났던 개린이 다윈이다. 이대로도 충분히 행복하지만, 나와 남편의 개 육아 철칙 1조는 '우리 개는 우리가 핸들링하고 통제한다'이다. 타인에게 절대로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혹시 모를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평소부터 철저하게 방지하기 위해서다. 잭 러셀의 평균 수명은 7~8세다. 어떠한 유전적 병 없이 근육질에 튼튼한 잭 러셀이지만_ 사냥개의 본능 상, 갑자기 어떤 물체를 보거나 호기심이 생기면 고층 건물 창 밖으로, 차 밖으로 어디든 뛰쳐나가 분별없이 뛰어들어 사고사를 당하기 때문이다. 

이제 어엿한 성견이 되었으니, 다윈이 좀 더 차분하고 집중력 있는 개로 거듭나도록 노력해야겠다. 

다윈, 집중~! 마주보며 함께 웃는 행복한 시간 

"네... 한동안 친구들과 뛰어노는 산책은 조금 줄여야겠네요. 그런데 혹시_ 다윈이가 이제 성견이 되어서 머리가 굳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개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배워요. 노견이 돼도 새로운 걸 배우고요. 개들은 배우는 거, 되게 좋아해요!" 


역시, 사람보다 나은 개들이다. 귀찮음에, 매너리즘에, 권태에_ 어느샌가 새로운 것, 도전하는 것, 시도하는 것에 벌써부터 관심을 끊은 나와는 달리_ 개들은 평생 새로운 걸 배우고, 도전하고, 시도하려고 한다. 조금만 길을 터주고 이끌어주면_ 금세 천진난만한 눈을 하고 '좋았어! 해보지 뭐!!" 하고, 함께 하는 우리에게 짜릿함과 감동을 안겨 준다. 옛 조상 때부터 그랬듯_ 개들은 인간의 사랑과 관심을 목말라하며, '엄마 아빠 맞춤형'으로 오늘도 열심히 눈치를 보고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갈수록 배운다.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어려운 개 육아생활을 통해, 다윈에 대해 알아가며_ 삶을 배우고 있는 기분이다. 


오늘은 다른 산책길에 나서 본다. 리드줄을 양 손에 잡고, 나란히 서로에게 집중하며 천천히 걷는다. 


'갑자기 왜 이래? 빨리 가자!' 


마냥 신나게 끌고 달렸던 산책 시간에 훈련을 하겠다고 사사건건 통제를 하니, 다윈이 몸을 긁적 대며 답답한 마음을 호소한다. 아니, 오늘은 나란히 갈 거야. 끌지 마! 

몇 번 주의를 주고 알려줬더니, 또 곧 맞춰서 걷고 멈추고 해주는 게 기특하고 신기하다. 

한동안은 익숙해질 수 있도록_ 차분한 산책을 하려 한다.   


내가 뭘 해도 나에게 딱 맞춰주는_ 오늘도 진화하는 내 강아지. 

다윈,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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