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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Apr 08. 2021

오늘의 화풀이 상대는 저 개다!

분노의 눈은 언제나 약자를 보고 있다.

"혹시 그 빌런 만난 적 있으세요? 개만 보면 무조건 욕하면서 공원에서 나가라고, 경찰에 막 신고해요. 봄이네 엄마랑 두기네 아빠한테도 개를 왜 데리고 나왔냐고, 소리 지르고 그랬대요." 


우리 집 앞 체육공원은 엄청나게 넓다. 농구장부터 풋살장, 인라인 스케이트와 게이트볼까지 즐길 수 있고, 구획도 잘 되어 있다. 아이들부터 어르신들까지 모두 즐기기에 완벽한 명소 아닌 명소다. 물론 온 동네 강아지와 보호자들이 사랑하는 산책 아지트이기도 하다. 나와 다윈도 아침 혹은 이른 오전 시간에 들러 강아지 친구들과 놀거나 한쪽 구석에서 둘만의 운동을 하기도 한다. 나란히 걷는 연습이라든지, 공놀이라든지... 조기 축구회 모임을 하거나 유치원 아가들이 마실 나오는 때, 한창 붐비는 시간을 피해서 오붓이 즐기는 노하우도 생겼다.  


나는 그 '빌런'이라는 아저씨를 운 좋게도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그 큰 공원에 거의 매일매일 나와서, 저 멀리서부터 개만 보면 소리를 지르고 나가라고 한단다. 다짜고짜 냄새나고 똥도 안 치워서 공원에 피해를 준다고, 당장 나가라고 한다니_ 뭔가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는 사람인 걸까... 그렇다 해도 매 번 경찰서에 신고까지 하는 바람에, 응대하시는 경찰관분들도 황당하고 진력이 나서_반쯤 포기하셨단다. 


빌런의 존재를 알려준 시츄 보호자분은_ 사실 우리 동네에 수많은 빌런들이 있다고 덧붙이셨다. 좁다면 좁은 이 동네의 강아지 산책 코스에서 얼마나 서러움을 자주 겪으셨던지, 젊은 남자, 아주머니, 아저씨 그리고 어르신들까지_ 마치 자신에게 분풀이를 쏟아내듯 작은 시츄 강아지에게 화를 낸 적이 많았다고 한다. 한 번은 별 이유 없이 시비를 걸더니 시츄를 발로 차 버린 사람 때문에_ 너무 무서워서 산책 시간을 바꾸기도 하고 시간을 줄이려고도 했다고 하셨다. 짐승의 세계에서도 이런 경우는 없는데, 사람이기를 스스로 내려놓은 걸까.    


다윈을 키우며 알게 된 보호자들에게서_ 이런 경우는 꽤 흔하다는 반응이 많았었다. 지난날, 보호자들이 자신의 개를 컨트롤하거나 교육의 개념이 부족해 이런저런 사고들이 일어났던 탓에_ 비 반려인들의 뇌리 속엔 개가 곧 경계와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은 이해한다. 지금도 종종 개 물림 사고가 일어나고 있으니, 막연히 '개는 위험하다'는 섣부른 일반화 식의 사고는 더욱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 멀리서 보기만 해도 무섭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체구가 큰 개에게 '그렇게 큰 개를 왜 키우냐'며 따지거나, 작으면 작은대로 '나오지 말라'라고 손과 발을 휘두르는 식의 반응은 지극히 인간답지 못하다. 가끔씩 이런 경험담을 들으면 '이게 '묻지 마 폭행 사건'과 뭐가 다른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내 얼굴에 뭐 묻었숴? 

분노와 혐오의 눈은 항상 약자를 본다. 

더 약하고, 더 소수이며, 이왕이면 더 보잘것없어서- 쉽게 멍들고 짓밟히고 부서질 것들을 쫓는다. 

요즘 내가 힘들었던 일, 상처 받았던 이유, 속상하고 화가 났던 것들이 약자의 모습 속에 얼룩덜룩 비친다. 

기분 따라 느낌대로 내뱉는 말, 휘두르는 폭력 속- 상대가 상처 받고 아파할수록 나는 더 우월해진 것 같다.  

 자연세계에서 생존을 위해 갖게 된 '불쾌'와 '미워함'이라는 인간의 본성이, 사회가 발달하고 복잡해지자 '성소수자', '난민', '인종', '종교', '정치적 신념'에 따라 손가락질을 하는 것으로 발달했다가-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라서 미워하고, '맘충', '아주매미', '틀딱충'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더 비열하게, 더 디테일하게 진화했다. 그러다  하다 못해 이제는 '개'와 '고양이'라는 동물에게까지 온 걸까.    


인간은 얼마나 한심한 존재인가, 정말 우리는 진화한 생명체가 맞을까. 

살아가며 이렇게나 많은 대상을 다 미워하면- 정작 내 귀한 인생은 언제 사나, 분노하고 혐오하느라 24시간이 모자랄 판인데.  

  


다윈과 함께 눈부신 봄빛을 맞으러 산책길을 나선다. 나무도 좋고, 풀도 많고 꽃 내음도 향긋한 하천길로_ 꽤 오래 걸어야 하는 소풍을 나왔다. 반대편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다윈을 보고 반갑게 인사하신다. 


"아이고~ 산책 나왔어? 아하하하하! 넌 눈이 왜 그렇게 작니? 진짜 못생겼네~ 아하하하!" 


화가 나거나, 기분 나빠할 가치도 없다. 

일 년 내 며칠 안 되는 이렇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날, 처음 만나는데도 자신을 반기며 좋아해 주는 작은 생명과 마주하고도_ '눈이 작고 못생겼다'는 것을 보는 눈. 그 사람의 마음은_ 어떤 지옥 속에 살고 있을까.  


"다윈, 괜찮아. 저 아주머니 마음이 작은 거야. 우리는 우리의 예쁜 길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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