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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Apr 07. 2021

다윈의 '개 배우' 도전기

심장을 울리는귀여운 외면연기의 소유자,남우개주연상도전하다!

다윈의 모견은 잘 나가는 개 모델이었다. 대한민국의 탑 배우인 원빈과 커피 광고까지 찍었으니, 개 모델계에서는 베테랑 스타인 셈이다. 아쉽게도 이제는 긴긴 촬영 스케줄이 버겁고 힘든 나이가 되어_ 은퇴를 했다고 한다. 그녀의 멋진 모습을 더 이상 TV에서 볼 수 없다니! 요즘도 아쉬운 마음에 '너네 엄마 배우였어! 엄청 유명했어!'라고 다윈에게 그녀의 눈부신 활약상을 이야기해 주기도 한다.       

 

다윈이가 딱히 엄마 개의 스타성을 물려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_ 모견 캐스팅과 촬영을 도와주셨다던 훈련사분께 연락을 받게 되었다. 제의가 들어온 작품이 영화이기 때문에 훈련이 잘 되어 있고, 개인기도 몇 가지 할 줄 알아야 한다고_ 귀엽고 똘똘한 잭 러셀을 찾고 계셨단다. 


"세상에, 다윈! 너 이러다 아카데미 가는 거 아니야? 데뷔작부터 영화라니!"


남편은 실소를 터뜨리면서도 내심 우쭐하며 좋아하는 눈치다. 

촬영 일정에 맞추어 휴가를 내야 하나 중얼대더니, 벌써부터 미용 가위를 들고 설쳤다.  

한 껏 들뜬 우리 모습에 주인공인 다윈은 어리둥절하더니, 별 관심 없다는 듯 인형을 물고 뒹굴뒹굴 댄다. 


너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고, 이 녀석아! 

다윈 네가- 엄마의 뒤를 이어 대스타가 되는 거야!! 

내 마음은 벌써, 귀여운 턱시도를 빼 입고 네 발로 위풍당당 레드 카펫 워킹을 하는 다윈을 상상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신견(犬) 배우, 다윈입니다! 취미는 간식 먹기, 특기는 간식 빨리 먹기예요~!

코로나의 영향이었을까, 촬영 즈음에 준비 사항을 알려주시겠다던 훈련사님께서_ 영화 진행이 잘 안되었다는 비보를 전하셨다.


"괜찮아! 원래 대배우들은- 이런 시련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거야. 이런 게 성공 스토리다, 너!" 

   

아쉽고 속상한 건 우리지, 다윈이겠는가. 

남편은 다윈에게 하는 말인지 나에게 하는 건지, 아니면 사실 본인이 제일 기대가 컸었던지- 

괜찮다는 다윈을 굳이 끌어안고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몇 달이 지났을까. 그 훈련사분께서 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엔 영상 광고인데_ 그저 다윈은 자유롭게 놀기만 하면 된단다. 데뷔를 코 앞에 두고 시련을 한 번 겪었으니,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애견 운동장 가서 노는 셈 치자 싶기도 하고, 마침 일정도 맞아 촬영을 하기로 했다. 


"그래도 첫 촬영이고, 예쁘게 잘 찍어주는 곳인 것 같은데- 추억이잖아, 나도 가보지 뭐." 

  

촬영장이 멀었기에_ 다윈이만 픽업해서 끝나고 데려다주시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셨지만, 

첫 촬영이라는 불안함과 기대로_ 결국 온 가족이 총출동하기로 했다. 




집합 시간은 아침 8시, 우리는 새벽 6시에 일어났다. 

비몽사몽 한 다윈을 차에 태우고, 우리는 촬영지까지 달렸다. 

오늘 촬영은 인형같이 예쁜 비숑과 멋진 스탠더드 실버 푸들, 앙증맞은 웰시코기가 한 팀이 되어 신나게 노는 것이 콘셉트라고 했다. 


첫 번째 컷, 야외에서 뛰어노는 장면. 

다윈은 큰 푸들과 함께 달리며 원반 던지기 놀이를 해야 했다. 하지만 다윈은 스탠다드 푸들이 가지고 노는 거대한 원반을 공중에서 캐치하기는커녕, 무거워서 물지도 못했다. 당연히 계속 NG가 났고, 다윈 체구에 맞는 원반으로 바꿔야 한다는 전문 훈련사의 제안에도_ 촬영팀은 아랑곳없었다. 바로 그 원반이 광고 상품 중 하나였기 때문에. 답답하지만 서로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을 어쩌겠는가. 날씨는 찌는 듯한 한여름 같았다. 계속되는 원반 놀이에 다윈은 금세 지쳐버렸다. 

개 배우의 삶이란! 더우면서도 모두가 자기를 바라보고 좋아하는 이 순간이 마냥 행복한 다윈.


그늘에서 간식과 물을 먹고 쉬었다 뛰었다를 반복했다. 단순히 노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직감이 들어서였는지_ 엄청난 환호성과 칭찬을 해야 겨우 텐션을 올려주는 다윈. 개들도 덥고, 사람들도 더웠기에_ 모두가 다윈만 쳐다보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반복에 반복... 따로 즉석 훈련도 받으며 재촬영을 거듭한 끝에, 겨우 원반을 물어오는 장면을 찍었다. 영화배우의 명연기를 지켜보듯, 숨 죽여 바라보던 그 순간! 다윈이 어찌나 대견했던지!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손뼉 치며 좋아해 주니, 다윈도 마냥 행복해했다. 


"다윈이 같은 애 없어요. 순하고, 똑똑하고- 새로운 걸 시켜도 바로바로 다 배우네요. 성격도 너무 좋고, 에너지도 좋고!"


촬영을 도와주시는 훈련사분께 칭찬을 들으니, 고생한 다윈이 안쓰러우면서도 어깨가 절로 으쓱해진다. 

잠깐, 나 너무 팔불출 같았다. 다윈밖에 모르는 '개'불출.

   

자기 몸 만한 크기의 원반을 물어오는 다윈. GOOOOOOD BOY!

원반을 물고 호다다닥 달려오는 사랑스러운 장면은 엔딩이 아니었다. 

 촬영은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었다. 

실내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찍는 컨셉이었기에_ 우리는 야외 촬영보다 훨씬 수월할 것이라 예상했다. 촬영 준비 시간에 우리는 다윈을 켄넬에서 쉬게 했다. 


"아코, 귀여워! 이 친구는 완전 프로네요! 촬영 대기 시간인 줄 어떻게 딱 알고- 자체 휴식하는데요?" 


몽실몽실 구름 인형 같은 비숑, '뿌숑'이라는 이 모델견은 이미 유명한 스타다. 다윈의 엄마처럼_ 뿌숑이는 국내 유명 배우들과 TV광고, 화보까지 두루 섭렵했고_ 온갖 브랜드에서 강아지 용품 협찬 러브콜이 들어올 만큼, 프로페셔널한 모델이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_ 개 배우 몇 년이면, 슛 들어갈 때와 대기해야 할 때를 아는구나... 역시 프로는 다르다! 

 켄넬 안에 있는 다윈을 본다. 갓 데뷔한 신인, 아니 신견(犬) 배우는 열정만 넘쳐서 쉬라고 할 때는 안 쉬고_ 친구들과 놀겠다고 애절한 눈빛을 쏴댄다. 

안 돼! 쉴 때 쉬고, 빨리 찍고 퇴근해야지, 너희 엄마처럼 멋지게 끝내자고! 


기나긴 대기 후에, 다윈의 차례가 됐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흘렀던 시간은 어느덧 오후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사람들도 지치고 개들도 지쳐_ 작은 소리에도 모두가 예민해졌다. 이런 상황에 촬영팀 내부에서도 문제가 생겼는지, 촬영 분위기가 오전과는 달리 무겁고 서늘했다. 개들은 더 예민해서 스트레스받을 수도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초보 개 배우 다윈. 피로감에 주변의 스트레스 상황까지 더해지니_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며 산만하기만 했다. 거기에다 연출 감독님은 계속해서 다윈에게 새로운 미션과 개인기를 요구했다.   

 작은 소리에도 모두가 짖어댈 만큼 민감해진 상황, 게다가 다윈이가 마지막 컷이라며 또 모두가 다윈만을 바라보는 이상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다윈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남편과 나는 우리대로 안절부절, 촬영팀은 냉랭하고 서늘한 기운을 뿜어대며_ 촬영은 점점 산으로 가는 듯했다. 


"뭔가 이상해. 콘티에 없는 내용을 주문하시는 것 같은데? 아니 그리고_ 이제 1살 된 강아지한테 새 장난감 던져 줘 놓고, 다윈이한테 지루해하는 연기를 보여달라니?"

 

보고 있던 내가 남편을 따로 불러내 속삭였다. 실내 촬영은 크게 어려울 게 없으니, 훈련사분들도 잠시 현장에 안 계시고 없었기 때문에_ 내가 연출 감독님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나 싶어서였다. 

 

"다윈이 시키면 또 잘해서 그래, 원반도 못한다고 했는데 결국 했잖아. 스텝분들이 강아지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아. 강아지들 촬영을 하는 팀이 아닌가 봐. 조금만 더 지켜보고, 아니다 싶으면 훈련사님께 먼저 이야기해보자."      

     

우리는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연출 감독은 '장난감을 바라보며 지루해하는 연기', '가만히 즐겁게(?) 노는 연기' 등을 다윈에게 주문했다. 


'아니, 아까 다른 강아지들은 그냥 노즈 워크하고 떨어진 간식 주워 먹는 모습을 찍었잖아. 왜 다윈이는 '내면 연기'를 해야 하는 거냐고!!' 


슬슬 마음속에서 온갖 삐뚤어진 생각이 다 들었다. 속상하면서도 다윈이가 잘한다니까_ 이것도 잘하겠거니 하는 마음, 빨리 끝내야 다윈도 쉴 수 있다는 마음으로 어쩔 줄 몰라 난감했다.  

원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자, 촬영팀도 지칠 대로 지쳐 한숨만 쉬어 댔다. 어쩌겠는가. 다윈에게 할당된 컷이 있었고, 촬영이 지연될수록 우리도 다윈도 더 힘들어질 테니_ 어느샌가부터 나와 남편까지 카메라 뒤에 붙어, 다윈에게 조금만 더 해보자며 연기를 시키고 있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또다시 겨우겨우_ 다윈이 지루해하는 모습을 찍었다. 턱을 괴고 있는 개인기를 즉석에서 배워서 장면에 담은 것이다. 훈련사께서는 '이걸 또 바로 배워서 하네!' 하며 칭찬하셨지만_ 초짜 개 배우 가족들은, 이미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버렸다. 

다윈의 '지겨워하는' 연기. 턱을 괴고 있는 개인기를 현장에서 바로 배워 소화해냈다. 이 정도면 연기 잘하는 거 맞죠?! 

촬영을 마치니 오후 6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 길고 어둑했다. 

지쳐서 잠이 든 다윈을 보며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다윈, 미안해. 너무 힘들었지? ...이제 정해진 것만 하자. 하란다고 다 하지 말자!"  


"뭐??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말자'가 아니라?" 


"처음이라 너무 무리하고 눈치만 봤어. 못하는 건 못한다고 하고, 아닌 건 아닌 것 같다고 했어야 했어. 근데 나중에는 나까지 다윈한테 연기를 강요했잖아. 너무 미안해 다윈..." 


"그런데_ 다윈이 너무 잘하더라. 결국 그 감독이 원하는 거 다 해냈잖아! 그 훈련사 분도 다윈 같은 애 처음 봤다고 칭찬하시고! 역시, 타고났어, 내 새끼!!"  


"다음부터는 촬영 전에 콘티를 꼭 받자. 그리고 무리가 안 가는 수준의 것만 하자고. 쉴 때는 쉬고, 한 번에 끝나게 제대로 준비해서 가는 대신_ 절대 늦게까지 찍게 안 할 거야." 


"그러다 다윈, 연예인병 걸리겠네. ...연기 학원 보내야 되나?" 


돌아오는 내내_ 나는 울었다. 

'보호자'라면서 나는 왜_ 곤란한 상황에 다윈을 보호해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강요만 했을까. 

이렇게 온 가족이 새벽부터 저녁까지_ 즐겁자고, 추억이라고, 신나고 들떠서 시작해놓고_ 이게 뭐야. 

새근새근 고이 잠든 다윈을 보며, 나는 내 강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_ 또 깊은 생각에 빠졌다. 


촬영 결과물이 나왔다. 한편으로는 뿌듯하고, 또 한편으로는 촬영 날의 기억 때문에 씁쓸하기도 했다. 


"형수! 다윈이 영상 봤어요! 엄청 잘하던데요! 친구들한테 다 자랑했잖아요~ 우리 개 배우, 스타 돼서 집안 일으켜 주겠네!"


"고마워! 집안을 일으키긴, 우리 둘이 새벽부터 운전해서 종일 붙어서 고생하고... 다른 보호자들도 보니까, 돈 때문이 아니라 진짜 즐거워서 열정으로 하는 것 같아."   


물론 '개 배우'의 개런티는 각각 다르지만_ 보호자는 매니저가 되어 지방까지 차로 이동해서 계속 옆에서 케어해야 하고, 촬영은 항상 뜻대로 제시간에 안 끝나는 경우가 더 많으니, 하루 일정을 꼬박 비워야 한다. 그렇다면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 수준이다. 그야말로 강아지와의 추억과 특별한 경험 쌓기 정도라 하겠다. 물론, 그 커리어들이 쌓여서_ 인플루언서가 되고, 광고와 협찬이 붙기도 한다. '워킹 독'을 보면 무조건, '보호자라는 사람이 개를 돈벌이 수단으로 본다'는 의견은_ 어쩌면 겪어보지 않고는 쉬이 판단할 수 없으리라. 나도 처음에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호된 신고식을 겪고 나니, 현장에 있던 보호자들의 열정이 보인다.  


그 후로 한 번 더 광고 영상 제의가 들어왔다. 나는 바로 콘티부터 받고, 촬영 시간을 체크했다. 흠, '댕댕이 운동회'라는 컨셉이고, 정말 콘티대로 공놀이, 달리기만 하는 거라면_ 산책할 겸 한 번 더 해보자! 

 그것도 경험이라고_ 확실히 두 번째부터는 촬영이 수월했다. 콘티를 보고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은 준비했기 때문에, 촬영도 훨씬 빨리 끝났다.     

 다윈은 벌써 촬영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확실히 자기 엄마를 닮았나 보다 싶으면서_ 신나게 노는 다윈을 보고 나도 금세 마음이 놓였다. 


"다윈이가 진짜 뭘 시켜도 다 잘하네요. 영상으로 보면 확실히 더 예뻐요!"  


촬영 감독님 칭찬에 또 '개'불출이 되어 헤벌쭉 웃는 나. 그러면 뭘 하나, '잭 러셀'은 은근히 광고주들에게 인기가 없단다. 모델로 제일 인기가 많은 종은 주로 몰티즈, 비숑, 푸들이라고 했다. 작고 하얗고 예쁜 아이돌 친구들 사이에서_ 다윈은 연기력과 재주로 승부를 봐야 하는 것이다. 개 배우의 길은 역시 멀고도 험하구나!  


두 번째 촬영물을 남편과 함께 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다윈, 넌 실력과 진정성으로 인정받는 국민 개 배우가 되자! 어차피 외모는 한철이야!" 


남편은 프로필 사진이라도 찍어서 연예 기획사에 보내봐야겠다며 너스레를 떤다.

  

어디까지나 다윈의 건강과 컨디션, 즐거움이 최우선이다. 

우리가 함께 행복할 만큼만 즐기자.    

다윈! 넌 나에게 이미 우주 최고의 슈퍼 스타이자, 아이돌이야! 우리가 평생 팬클럽 회장이 될게. 


개 배우 다윈, 오늘도 더 사랑해! 

       

댕댕이 운동회 컨셉의 광고. 오른쪽 사진에서 2등 웰시코기 '나무', 3등 푸들 '교꾸', 밑에는 퍼그 '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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