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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Apr 17. 2021

개 육아 아이템의 유혹

마음으로 낳아 지갑으로 키운다.

"뭐가 그렇게 왔어? 내 거야?" 


"다 다윈 건데." 


"..." 


이른 아침부터 신나서 택배 상자를 뜯는 나에게, 남편의 핀잔 폭격이 시작됐다. 봄 셔츠도 사야 하고 재킷도 필요하고, 신상 운동화도 맞추자고 몇 날 며칠을 졸랐는데 들은 척도 안 하더니_ 개 아들 것만 잔뜩 샀다며 서러움이 폭발한다나. 하긴, 다윈의 털 빠짐과 일상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산책 시간 덕분에 예쁜 옷도, 힙한 신상 패션도 관심을 끊은 지 오래다. 그렇게 비싸고 의미 없는 소모품들을 살 바에, 우리 강아지 오리 목뼈, 소간 져키라도 하나 더 사주는 게 낫지! 한 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어 치명적인 사랑을 나누었던 쇼핑과 나 사이, 어쩌다 이리도 냉랭해져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었을까. 요즘은 '쇼핑'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지루함과 피로가 몰려든다. 


다윈을 위해 주문한 건 별 것 아니다. 간식 몇 가지와 사줄 때마다 물어뜯어 없애는 강아지 전용 방석. 

이것도 며칠을 찾고 비교하고 고민한 끝에 주문한 거다. 

다른 개엄마들에 비하면- 나는 짠내 날만큼 보수적인 소비자라고! 


강아지 아이템도 덮어놓고 사자면 끝이 없다. 

곧 여름이 다가오니 벌레 퇴치 스프레이와 목걸이도 사야 하고, 매달 먹어야 하는 내외부 기생충 약도 직구로 구매해 놓아야 한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다가올 무더위에 시원하게 쉴 수 있도록 쿨매트도 사고, 다 낡아 못쓰게 돼버린 강아지 카시트도 필요하다. 어차피 십 분도 못 버티겠지만- 노는 게 제일 좋을 때인 개린이를 위해 터그와 삑삑이 장난감, 공도 살 때 많이 쟁여 놓아야 하고, 갑작스러운 무더위에 밥도 잘 안 먹는 귀하신 몸(?)을 위하여 습식 사료 캔과 영양제 몇 가지, 동결건조 간식도 챙겨줘야지! 요즘처럼 위생에 민감한 시기에는 반려동물 전용 살균 탈취제도 써야 하고... 산책 가방도 사고, 이동 가방도 사고_ 거기다 봄에 상큼하게 걸칠 예쁜 케이프나 알록달록 티셔츠, 신상 목줄과 리드 줄 세트, 눈부신 햇빛에 우리 댕댕이 눈 보호를 위한 고글까지 갖춘다면- 당장 어디에 내놔도 개엄마 마음 뿌듯한 우리 동네 펫셔니스타까지 될 수 있다!  


개육아 선배들이 그랬다. 육아처럼, 개육아도- 아이템빨이라고. 

    



"다윈맘! 오늘 뭐하세요? 펫 페어 가실래요?"  

  

그야말로 개축제! 

개 아이템의 시작부터 끝까지- 없는 건 없다는 개 페스티벌에 함께 가지 않겠냐는 거절할 수 없는 유혹. 

 펫 페어에서 이런저런 행사들도 많이 하고, 평소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지만_

 모든 페어들이 그렇듯, 무작정 갔다가는 이것저것 홀려서 구경하느라 멘탈도 탈탈 털리고, 지갑마저 탈탈 털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자신 있다! 개육아 엄마들과의 단체 카톡방에서 매일같이 추천하는 각종 아이템도- 몇 번이고 참고 참아내며 안 사고 버텨왔던 나다. 다들 신상 목줄과 리드줄, 튼튼한 하네스 공동구매를 하고 있을 때, 어느덧 다 해어진 리드줄을 보며, '아직 쓸만 한데 뭘...' 하는 태도로 스스로 소외된 적도 많았다.   


흠, 뭐가 필요한지 한 번 볼까? 

집을 아무리 둘러봐도 별로 필요한 게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다윈과의 펫 페어가 처음이기도 하니, 구경만(!) 해보고 오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펫 페어 박람회에 도착했다. 사람 반, 강아지 반인 행사장 내부는 들어가자마자 후끈후끈하다. 처음에는 너무 많은 인파(波)견파(犬波)로 발 디딜 곳도 못 찾고, 다윈도 당황스러웠는지 내 뒤로 숨었다. 와, 펫 페어 촌놈인 우리에게는 정말 별천지 세상이다. 사료도 전 세계 모든 사료가, 간식도 져키부터 동결건조, 껌, 수프 등으로, 생선부터 캥거루, 사슴고기까지 다 있다. 나에게는 아직 신세계인 개 유모차 브랜드도 이렇게나 많고, 강아지 스파 용품까지 있다. 다윈은 여기저기서 간식 시식을 하느라 신났다. 작고 귀여운 강아지 옷과 모자를 구경하는 나는 어느새 헤벌쭉. 보기만 해도 즐겁다.  


개모차 타고 신난 다윈.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장난감도 생기고- 개린이는 그저 신이 났다! 

흔들리는 나를 다잡고, 다시 독하게 마음을 먹는다. 

나는. 아무것도. 사지. 않겠다! 

 함께 온 개육아 선배는 개모차를 구입했다. 노견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쇼핑몰을 갈 때, 식당이나 카페를 갈 때, 그리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쓸모가 많다는 것. 또다시 마음이 흔들흔들한다. 은근히 실내 산책도 많이 하기 때문에 유용할 거야. 그리고 나중에 다윈이 나이 들어서까지 오래오래 쓸 수 있잖아?   


전시장 한 바퀴를 충실히 돌았다. 내가 건진 것은 습식 간식을 넣을 수 있는 장난감과 요거트 동결건조 간식, 반 값 할인으로 얻은 습식 사료, 치석 제거 영양제 한 개씩이었다. 개모차는 절실히 필요성을 느낄 때 중고로 구매하면 되고, 옷은 아무리 예쁘대도 산책 한 번에 더러워지니 필요 없고,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급하지 않으니 됐고... 신나서 구경했다가도 냉랭한 빈손이니, 짠순이 개엄마는 머쓱하기 짝이 없다.    


사료, 배변 패드, 목줄과 리드줄 같은 기본적인 개육아 필수품들을 제외하고- 꼬장꼬장하도록 짠내 나는 개엄마인 내가 생각하는 필수 아이템은- 클리커와 반려견 이동 가방, 그리고 치석 제거제. 이 정도다. 나머지는 다시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작은 사치 정도라 하자.  


 클리커는 훈련할 때 사용하지만, 실생활에서 좋은 습관을 길러줄 때도 자주 쓴다. 클리커 대신 칭찬으로 대신할 수도 있지만, 사람의 말은 길고 억양이 달라 칭찬받는 순간을 정확하게 캡처하기 쉽지 않다. '딸깍' 하는 짧고 분명한 소리로 강력한 신호를 주면, 사람도 개도 혼동 없이 효율적으로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 긍정 강화 훈련을 하기에 훌륭한 도구다. 다윈은 어릴 적부터 클리커를 사용해서 훈련을 했다. '앉고, 엎드리고, 기다리기' 기본훈련부터, 배변훈련, 산책할 때 끄는 행동 제어하기 등등... 다윈이 1살을 넘기며 한동안 클리커를 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흥분 없는 산책 훈련을 하거나 갑자기 생긴 나쁜 버릇을 고치느라 요즘 다시 클리커를 꺼내 사용하고 있다. 


이동가방까지 사야 해? 다윈이 어릴 적부터 거의 일 년을 고민했다. 동물병원에 갈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일 때, 그리고 실내에서 종종 사용하기 때문에 안 사고 싶어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사지 않고 켄넬로 대신 다녔던 적이 있었는데, 다윈이 무거운 만큼 들고 이동하기도 쉽지 않았다. 흔들거리는 나의 팔과 울렁이는 켄넬 속 다윈도 너무 힘들었다. 7kg 정도 나가는 다윈을 가방에 이고 여기저기 다니기엔 여간 간편한 일이 아니기에_ 가방도 더 튼튼하면서 가벼운 것으로 고르는 데도 한참을 망설였던 것 같다. 구매하기 전에는 굳이 살 필요가 있을까 했지만,  가끔 카시트 대용으로도 사용할 수도 있으니_ 사용해보니 나름 존재의 의미가 있는 용품인 것 같다. 

 

육아 선배 덕분에 알게 된 치석 제거제. 이것 또한 굳이 사야 하나 싶었지만 확실히 사용 전 후가 다름을 느끼니, 사악한 가격의 이 요물단지 같은 물건을 계속 사용하게 된다. 개들은 충치가 잘 생기지는 않지만, 한 번 생겼다 해도 발견하기 쉽지 않아 결국 발치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발치는 치매의 위험을 높인다. 다윈이 양치를 곧잘 한다고 해도 안쪽까지 꼼꼼히 닦을 수 없고, 스케일링 치료는 마취를 해야 하니_ 꼼꼼하게 다 챙겨주지 못하더라도, 구강관리는 평소부터 잘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 의미에서 달달한 개껌 간식을 사주는 것보다는 치석 제거제를 밥에 섞어주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나는 거지꼴을 해도, 우리 아들은 좋은 옷에 색색 예쁘게 코디해 줘야지. 이렇게 하고 나가면 사람들이 얼마나 예쁘다고 한다고!" 


내가 어릴 적,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던 사촌 언니. 한 듯 안한 듯, 고급스러운 메이크업에 세련된 패션 센스, 잔향마저 우아한 향수까지 칙칙 뿌리고 나설 때면_ 어린 나에게도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언니는 항상 나의 '잇 걸'이자 '패션 아이콘'이었다. 무심히 툭_ 걸쳤대도 그 안에 고도의 재치와 감각이 보이니, 내 눈에는 꼭 케이트 모스나 '프렌즈' 속 제니퍼 애니스턴 같았달까. 

 그랬던 그녀가 결혼해서 아이 둘의 엄마가 되고 나니, 정말 무심하게 후줄근한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때 나는 실망감을 넘어,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꼈던 것 같다. 대신,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조카의 옷맵시는 눈이 황홀할 지경이었다. 언니의 패션 열정은 자신을 버리더라도- 자신의 아들에게서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언니가 저렇게 말할 때만 해도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절대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했는데... 애엄마가 되기도 전, 개엄마부터 되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격한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모든 열정과 두근대는 감성은 어느새 모두 다윈에게로 향해, 다윈을 보며 대리 만족하고 다윈을 통해 드러난다. 목줄과 리드줄 색을 예쁘게 조합하기만 해도, 예쁜 꽃무늬 크롭 티셔츠만 입혀도- 오구오구! 내 새끼,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온몸으로 뿌듯함을 느낀다. 어느새 나도 몰래, 나와 남편의 옷보다는_ 다윈 옷을 보느라 오늘도 핸드폰 배터리가 닳은 줄도 모른다. 펫 패션 앞에서까지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결국 펫 페어에서조차 꾸욱 참아왔던 쇼핑 욕구가, 화사한 봄 신상 셔츠를 본 순간 폭발해 버렸다. 


이렇게 입어주면 나도 펫셔니스타!


"이게 뭐야?! 너 진짜 내 옷은 안 사주고! 다윈이가 무슨 옷이 필요해!" 


"햇빛 차단용으로 산 거야. 짜잔! 어때, 예쁘지?" 


" ... 필요하네. 너무 예쁘다 다윈!!!"      


귀욤미가 터지는 다윈 펫션쇼에 남편과 나는 연신 싱글벙글이다. 

그래, 우리는 괜찮아 다윈. 너만 예쁘면 됐지 뭐! 


기분 좋게 나서는 산책길에 예쁜 다윈 모습을 담겠다고 남편 녀석이 호들갑이다.  

무릎까지 꿇으며 다윈을 찍는 남편의 몰골을 보니_ 나와 다를 것 없이 추레한 차림이다. 

갑자기 뭉클하기도 하고 안쓰러워 보인다. 

나의 개 육아 동지이자, 한 가정의 팀원으로서_ 저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니! 

옷차림이 뭐가 대수겠냐마는, 이건 좀 심하다 싶다. 

 이번 주말에는 남편 녀석 옷도 좀 골라주고, 내 산책복도 업그레이드 해야겠다. 

물론 저렴한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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