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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Apr 19. 2021

다윈, 오빠가 되다.

'개엄마'와 '조카 바보' 사이에서_

반려견이 동반되는 대형 쇼핑몰 내, 햄버거 가게였다. 

난 그만 울고 말았다. 


나에게 조카가 생긴다니!!! 


축복의 소식을 전하는 임산부 본인도 아무렇지 않은데, 그런 올케 언니의 손을 붙잡고 청승맞게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나. 

시끌벅적한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감동과 기쁨의 눈물을 훔친다. 

유리창 너머 잔디밭에서 놀고 있던 다윈과 그만 눈이 마주쳤다.  


다윈! 너 동생 생겼대!!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도 심화되고, 방역 또한 철저한 혼돈과 불안의 시기에_ 나의 첫 조카는 태어났다. 올케 언니 임신 중에는 가족 생일 모임에서나 한 두 번 얼굴을 보았는데,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되어 그조차 쉽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산후조리원에도 남편인 오빠조차 쉽게 드나들 수 없으니_ 우리 가족들 모두가 태어날 아기를 향한 상사병을 심히 앓고 있었다. 

 다윈 생일 다음 날, 내 조카가 태어났다. 딸이라는 소식에 나의 아버지는 내가 본 적 없는 환희의 얼굴을 하고 계셨다. 푼수데기처럼 또 눈물을 흘린 나였지만_ 아빠의 모습을 보니 은근슬쩍 서운하다. 오빠가 태어났을 때는 온 가족이 경사 났다고 손뼉 치고 춤을 췄다면서, 내가 태어났을 때는 너무 못생겨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었다던 탄생 비화가 떠올라서다. 남존여비 사상이 뼛속까지 스며든 집안이라고 핀잔하면서도 넘겨왔는데, 이제는 손주 녀석보다 손녀가 최고라며 이토록 행복에 가득 찬 얼굴을 하시다니! 

 그렇다고 아기가 태어난 마당에 질투를 할 순 없지 않나. 반가워 아가야! 내가 너의 '고모'가 되겠구나! 

반가운 마음이 앞서도 달려가 볼 수 없으니- 하루에도 몇 번씩, 오빠가 사진을 찍어 공유해주었다. 그렇게나 무뚝뚝하신 아빠도 오빠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해서 더 많은 사진과 영상을 요구하신단다. 게다가 며느리에게는 부담스러울 테니 나에게 전화를 걸어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못 보겠지' 하시고는, 바로 말을 바꾸어 벌써부터 만날 날을 잡아보라니- 아버지, 진정하소서... 


오매불망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 사이 언니도 몸을 회복하고, 육아 적응도 좀 하고, 코로나도 조금 잦아들었다. 드디어 아가를 만나러 가는 날! 그렇게 기다렸던 조카와의 첫 만남인데... 난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황금 같은 주말, 온 가족 함께하는 산책만 기대하고 있던 다윈을 집에 두고_ 아기를 보러 가야 하는 것이다. 


"어딜 데리고 와! 가뜩이나 코로나 때문에 이제야 보는데- 개털도 온 집안에 날릴 테고, 갑자기 달려들면 어떻게 해." 


올케 언니는 함께 오라고 했지만, 우리 부부 생각에도 다윈과 아기의 만남은 뒤로 미루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막상 아빠의 '우리 손녀, 우리 손녀'와, 다윈은 절대 안 된다는 말을 들으니- 섭섭한 마음 감출 길이 없다. 


"아빠! 다윈도 우리 가족이거든요! 그럼 우리는 따로 만날 테니까 아빠만 보고 오세요!"

 하고 엄포를 놓았다. 아버지도 다윈에게 미안하셨던지_ 금세 화제 전환으로 '그 녀석은 뭐하냐' 하신다. 우리 집안 막내로 웃음꽃을 선사했던 '다윈 시대'의 막이 내리고, 일 년 만에 찬밥 신세가 된 다윈을 보니- 개엄마로서는 참 씁쓸하다. 



"저희도 그래요. 조카 너무 예쁘고 좋죠! 너무 사랑하지만, 저희 부부에게는 강아지도 가족이잖아요. 그리고 우선순위를 따지기는 좀 그렇지만_ 이 친구는 제 자식인지라, 이 친구를 먼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희 언니가 얼마 전에 조카 좀 봐달라는데_ 엄청 부담스러워서 못하겠다고 했어요. 개도 봐야 하는데... 혹시 같이 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서로 곤란하잖아요." 


"저는 아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조카가 생기면 다를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말 미안하게도... 역시 내 조카라고 갑자기 무한한 애착과 사랑이 샘솟지는 않더라고요. 저도 가끔 죄책감 같은 게 느껴져요."      


코로나로 인해 조카를 많이 보지 못한 탓도 크다. 자주 만나야 더 가까워질 텐데, 손에 꼽을 정도로 만나서 짧게 보고 헤어져야 하니_ 게다가 아직도 너무 아가인 조카를 만날 때마다 다윈과 함께할 수 없기에, 만나기로 마음먹다가도 금세 머뭇거리는 내 모습이 이상하고 비정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때 그 눈물과 환희의 햄버거는 누가 먹은 걸까. 한 번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한 것 같아서, 개엄마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다른 개엄마들도 이렇게 야릇하고 얄궂은 감정을 경험한 적이 있단다. 스스로를 자책하면서도, 한없이 조심스럽고 편치 않은 만남이기에_ 피한 적도 있다고. 아직 신생아 시기여서 서로 부담스럽기도 하고, 강아지가 아기를 대하는 올바른 방식에 대한 훈련이 현실적으로 어렵기도 해서다. 다윈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쩌면 몰랐을 감정들... 이 녀석, 참_ 별 걸 다 가르쳐준다 싶다. 

우리 집 공주님과의 첫 만남! 어찌나 예쁜지! 할아버지와 고모 눈에서 무한히 하트가 발사된다.

"다윈, 인사해! 동생이야, 여동생. 너 이제 오빠가 된 거야!" 


지난 설 연휴, 할머니의 산소를 찾아 성묘를 하며_ 드디어 다윈과 조카가 만났다. 다윈이 아기를 격하게 좋아할 수도 있으니, 우리 부부가 먼저 와서 할머니께 인사도 드리고 주변을 조용히 산책하면서- 주변 환경에 익숙해지고 차분해질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윽고 도착한 내 조카! 아빠는 돌아가신 할머니까지, 우리 가족 4대가 모였다고 행복하고 감사해하신다. 조심스럽게 다윈을 안고 눈 맞춤을 시켜본다. 유모차에 누워 다윈을 바라보는 아기의 눈이 어찌나 반짝반짝 예쁜지! 다행히 다윈도 차분하게 아기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냄새를 맡는다. 호기심 어린 아기와 다윈의 서로를 보는 눈빛이 평온하다. 할머니도 하늘에서 이 모습을 보고 좋아하고 계시겠구나 싶다. 


"이 녀석아, 너 이제 오빠 됐으니까 의젓하게 있어! 우리 집 관심이 다 동생한테 갔다고 서운해 말고! 넌 이제 어른이야." 


괜한 걱정이었나 싶을 만큼, 다윈은 점잖고 꽤 조심스러운 반응이었다. 다윈의 침착한 반응을 보자 아빠도 그제야 안심하셨나 보다. 다윈에게 간식을 주시며 농담 몇 마디 더 건네고는, 어쩌면 이리도 점잖으냐며 칭찬하신다. 다윈은 간식을 먹다가도 이 낯설고 작은 존재가 사랑스러운 듯, '이 세상에 와서 반가워!' 하는 눈빛으로 한참 동안 조카를 바라보았다. 올망졸망 예쁜 아기를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_ 나 또한 바라본다. 


'앞으로 다윈이랑 많이 놀자! 이렇게 잘 놀아주는 오빠는 없을 거야, 고모가 약속할게.'    

두근두근 첫 만남. 차분하고 부드럽게 인사하는_ 제법 괜찮은 '개'오빠 다윈

"너희 지금 뭐해? 우리 너희 집 근처에 온 김에_ 놀러 갈까 하고." 


일요일 오후, 갑작스럽게 집에 가도 되냐는 오빠 부부의 전화.  


'다윈이 산책도 가야 하고, 쉬게 두어야 되는데... 다윈 산책 후에 차라리 밖에서 만나자고 할까?' 


코로나 때문에 아기가 밖에 있기에는 위험해서 집으로 오겠다는 건데_ 그건 좀 아니다 싶다. 하지만 산책을 안 하면 아기가 와서도 놀아달라고 할 텐데_ 

 내 마음은 이미 '하나뿐인 조카가 온다니 좋겠다' 보다는- '다윈, 다윈의 털, 다윈의 컨디션'이었다. 그러다 생각의 말미 즈음_ 조카를 위한 편한 공간에 대한 고민 잠깐.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러했다. 미안해, 내 조카. '개엄마'도, '고모'도 처음이라 그런가 봐. 네가 자라면서 두고두고 보상해줄게...


오빠 부부에게는 미안하다며 거절의 말을 했다. 오빠네 집에 가기에도 쉽지 않은데, 다윈의 털 카펫이 깔린 곳에서 아기를 어디서 쉬게 할지 모르겠다며_ 조만간 깨끗이 대청소 후, 정식으로 초대하기로 했다. 


'우리 집 첫아기잖아?! 너무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매일 전화하고 싶고, 만나고 싶어서 안달해야 되는 것 아니야? 나는 정녕 '조카 바보'는 못 되는 걸까.' 


남편은 어떻게 모두가 같겠냐며, 그럴 수도 있다고_ 받아들이란다. 다윈이 없었대도 같았을 수 있다며, 새로운 관계가 어디 쉽겠냐고. 그럴까. 이제야 막 개엄마로서 나의 가치관과 생각을 정립해가고 있는 중인데, '고모'라니! 고모의 역할은 뭐지? 내 조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용돈과 선물을 주는 것 밖에는 생각나지 않는데 말이다. 


 이런 관계 정립도 쉽지 않은데, 나중에 정말 아이를 갖게 되면 난 어떻게 될까. 내 아기가 생기면 나도 다윈을 찬밥 신세로 전락시킬까? 다윈을 그만큼 신경 쓰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다윈이 귀찮고 성가시게 느껴지면 안되는데_ 아무리 노력한대도 시간도 몸도 한정적이잖아...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이렇게나 미안하고 안쓰러워서 눈물이 핑한다. 한없이 궁상맞은 생각만 하게 되는 나. 



 곧 조카를 보러 오빠 부부네 집에 간다. 그동안 만나지 못해 또 한 뼘 훌쩍 컸을 조카. 이번엔 더 예뻐진 모습을 사진기와 눈에, 마음에 꼭 담아놓아야겠다. 이번에는 다윈과 함께 가볼까 하지만, 우리가 미리 준비해둬야 할 사항이 많을 것이다. 방문하기 전 미리 충분한 산책도 시켜야 하고, 아기와 조심스럽게 인사하고 잘 지낼 수 있는 훈련도 해야 한다. 클리커와 간식, 리드 줄도 함께 챙기고, 다윈이 쉴 수 있는 방석도 가져가야 한다. 아예 들어가 쉴 수 있는 켄넬도 챙겨야겠다.    

 

앞으로 둘은 어떻게 지내게 될지 너무 궁금하다. 함께 산책도 하고, 놀러도 가고, 함께 뛰어노는 멋진 관계가 된다면 좋겠다. 어디까지나 고모로서의 바람이지만. 유년시절을 함께 보내는 강아지 친구가 있다는 건, 꽤 멋진 일이잖아?! 하지만 먼저_ 나부터 괜찮은 고모가 되어주겠다. 모든 게 낯설고 서툴고_ 허둥지둥 오락가락하겠지만 계속 배우면서 나아지겠지. 


내 사랑스러운 두 꼬마들, 잘 부탁한다!

개엄마로서도, 고모로서도 좋은 인간이 되어줄게. 너는 이미 멋진 오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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