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말았다, 남편의 정수리.
기분이 묘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남편은
내가 ‘한 구멍에 두 개’라고 놀릴 정도로
머리숱이 빽빽했다.
눈썹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진해서, 학교 다닐 땐 별명이
‘눈썹만 송승헌’이었을 정도.
짙은 눈썹에 선이 굵은 외모 덕분에
남자다워 보이는 우리 남편.
그런데 이 휑함은, 너무 낯설었다.
“여보, 정수리가 휑해!”
“그럴 리가!”
“아냐, 위에서 보니까 진짜 많이 비었어.”
“…..”
아, 탈모란…
마흔을 넘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걸까?
“명씨 중에 대머리는 없어.”
철썩같이 믿었다, 그 말을.
괜히 안쓰럽고, 왠지 미안했다.
가장의 무게가 머리카락에도 실리는 걸까.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땐,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와 동갑인데도 마치 대학생처럼 어려 보였으니까.
그 마냥 어려 보이는 모습이
처음엔 내게 스트레스였다.
결혼식에서도 하객들이 내게
“남편 연하예요?” 하고 물었고,
결혼 후에도 꽤 오래 그런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아이와 늘 함께 다녀서일까,
아니면… 정말 남편에게도
세월의 흔적이 내려앉은 걸까?
날씬했던 몸은 중년의 징표처럼 배가 나오고,
이마에는 한 줄 주름이 자리 잡았다.
그 모든 것들이 귀엽고 정겨웠는데,
이 휑한 정수리만은.
내 남편이… 탈모라니!
대머리는 없다던 명씨 가문이여,
슬슬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시길.
그리고 여보, 나 사실 괜찮아.
이 휑한 정수리도,
나만 볼 수 있는 자리니까.
남편의 정수리 위로도 세월이 흐른다.
우리도 그렇게,
나란히 늙어가고 있다.
#정수리탈모
#남편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