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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자라는 나]
달리며 함께 자라는 우리

by 담유작가


“엄마 밖에 나가서 열 바퀴만 뛰고 오자!”


아이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일요일이라 내내 집 안에만 있으려니 좀이 쑤셨던 모양이다. 실내복 위에 바람막이만 대충 걸치고 나갔더니, 아이는 바람을 맞자마자 “와! 시원하다!”를 외치며 단지를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빈아, 넘어져! 자전거 오면 어쩌려고!”


운동하는 걸 지독히도 싫어하는 나도 아이와 함께 뛰었다.


“엄마, 우리 세 바퀴만 달리자.”


보폭은 나보다 훨씬 짧은데, 나를 앞질러 달리던 아이가 두 바퀴쯤 되자 숨이 가빠왔다. “엄마, 나 이제 못 뛰겠어. 그냥 빨리 걸을까?”


나는 아직 힘들지 않은데, 초등학생 아이가 나보다 먼저 지친다니. 순간 ‘내가 공부만 강조하느라 건강을 소홀히 했나.’싶어 마음이 찔렸다.




우리는 달리기도 하고, 경보도 했다. 나무 한 그루를 결승선 삼아, 가위바위보로 먼저 도착하기 게임도 하며 놀았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자 아이 얼굴이 훨씬 환해졌다.


“엄마, 이제 우리 자주 운동하자.”


“그래, 주말마다 열 바퀴씩?”


“열 바퀴는 힘들어. 그냥 매일 조금씩 달리자.”


아이와 이렇게 함께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 동안 나는 그렇게 바쁜 척을 했을까. 사실 일을 할 때나 지금이나 여유 시간은 비슷하다. 달라진 건 ‘마음의 여유’였다.




그날 밤,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에서 아이는 딸이 아니라 동생이었다. 결혼도 안 하고 동생을 키우는 나, 모든 부담은 내 몫이었다. 돈은 잘 못 벌면서도 사립초 학비를 감당해야 했다. 머리를 묶어주려 해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친구가 없어 걱정하던 동생은 겨우 사귄 친구에게 허벅지에 유성펜 낙서를 당했다. 화가 나 그 집 엄마에게 따졌더니, 미안하단 말은 커녕 ‘아이가 전에 우리 집 침대에 오줌을 쌌다’며 되려 나를 몰아세웠다. 울면서 화장실에서 낙서를 지우다 “다시는 오지 말자” 고 아이를 달래는 순간, 눈을 떴다.




깨어서 곱씹어 보니, 꿈속 모습은 내 마음을 그대로 비춘 듯했다. 돈 걱정, 부족한 엄마라는 자책, 아이의 사회성에 대한 고민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무의식은 풀지 못한 과제를 자꾸 드러낸다. 그래서일까, 내 꿈 속 아이는 늘 딸이 아닌, 동생으로 나타난다. 어쩌면 나는 아이를 돌봐야 할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내 또 다른 자아로 겹쳐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이의 말처럼, 오늘 저녁에도 함께 달릴 것이다.


이번엔 보폭을 맞춰 달리고, 힘들어할 때는 손을 잡고 걸을 것이다.


엄마인 나는 오늘도 아이와 함께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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