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서 부엌을 돌려받자.
나도 MZ다!
80년대 생은 MZ 라 했다. 물론 요즘은 9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들이 우리와 구분하려고 ‘젠지’라는 말을 쓰지만, 어쨌든 나는 MZ다.
그래서 성역할이나 고정관념 따위는 내게 없다.
그건 나와 동갑인 우리 남편도 마찬가지다.
결혼 후 지금까지 부엌은 줄곧 남편 차지였지만, 서로 그에 대한 불만은 없다.
남편은 요리를 좋아하고, 새로운 조리 도구를 사는 재미나 장보는 즐거움도 누린다.
그런데,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청개구리 심리’ 같은 게 발동했을까?
내가 칼만 들어도
“하지마! 손 다쳐!”
무언가를 요리하려 들면-아마도 맛에 대한 불신 때문이겠지.-
“저리가!”
혹은 못미더운 듯 옆에서 서성이는 남편이다.
나는 요리나 살림에 재능도, 재미도 느끼지 못하지만, 막상 일을 접으려니
‘그래도 내가 뭘 좀 해야 하지 않나?’싶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직장에 다니는 남편이 집안일도 다 도맡고 있는데, 이건 좀 불공평한 거 아닌가 싶어서.
어제는 일을 일찍 마치고 집에 와, 밥을 앉히고, 무를 반달 모양으로 썰어 생선조림처럼 졸였다.
콘 옥수수를 채에 받쳐 물기를 빼고, 부침가루와 모짜렐라 치즈를 섞어 옥수수전을 부치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왔다.
“뭐해? 소시지는 왜 꺼냈어? 어제도 먹었잖아…”
말을 하며 어느새 냉장고에서 고기를 꺼낸다.
“여보! 오늘은 좀 내가 하게 놔둘래?”
살짝 오르는 화를 꾹 눌러 담아 말했다.
누가 보면 코미디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떤 아내가 남편의 요리를 마다한단 말인가.
게다가 10년간 다 받아먹고서.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다니.
그런데 설명할 수 없는 이 기분 나쁨은 뭘까?
“근데, 여보! 깨 어디 있어?”
“거기 냉장고 문 쪽!”
말을 하고 나니 얼굴이 뜨끈하다.
우리 집에 어떤 양념이 있는지도 모르는 주부라니.–물론 ‘주부’라는 말 자체도 나에겐 어울리지 않지만.
반찬을 몇 개 했을 뿐인데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급히 밥상을 차려 눈치를 보자, 남편이 말한다.
“무조림 맛있네.”
시험에 통과한 기분!
딸 아이가 옥수수전을 한 입 먹고 엄지 손가락을 든다.
이건 거의 장원급제!
‘됐다!’
어쩐지 안도감이 밀려온다.
그런데 또 이상하다.
내가 요리를 하는 게 정말 ‘부엌을 돌려받는'거였을까?
부엌이 애초에 내 몫이었나?
기성세대와 MZ,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내 또래.
아직은 역할과 개념의 경계가 정립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늘 남편의 고급요리를 ‘받아먹기만 하는’ 나는,
왜 이 기묘한 감정을 느꼈을까.
내가 부엌에 들어선 건 요리보다 그저 마음이 편해지고 싶어서였다.
언젠가 우리 딸이 지금의 내 나이가 되었을 땐,
남편이 요리하는 모습을
‘미안한 일’이 아니라
‘그저 고마운 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그리고 그저 편하게 밥 한 끼를 받아먹으며,
마음의 짐 없이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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