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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기억]추억을 담은 돈가스

by 담유작가

혼자 있을 때는 잘도 떠오르던 글감이, 딸과 함께 있으니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역시 글을 쓸 때는 주변이 조용하고, 마음이 고요해야 한다.


혼자 머리를 싸매고 있자니, 딸이 묻는다.

“왜 그래, 엄마?”

“글감이 안 떠올라.”

“그럼 돈가스 얘기 써,”

“응? 너 돈가스 먹고 싶어? 웬 돈가스?”


그러고보니, 나에게도 돈가스에 얽힌 추억이 많다.

그래, 오늘은 우리 딸이 건넨 ‘돈가스’라는 말에서 시작해 보려 한다.


처음 돈가스를 먹은 건 여섯, 일곱 살 무렵이었다.

어느 날,아빠가 갑자기 돈가스를 먹으러 가자며 데려간 곳은

턱시도를 입은 웨이터가 서빙하던 옛날식 경양식집이었다.


칸막이로 나뉜 방, 나풀나풀 레이스 커튼,

다방에서나 볼 법한 널찍한 소파와 테이블.

긴장한 채 앉아 있던 내 앞에 웨이터가 빈 접시 하나를 놓았다.


‘왜 밥은 안 주고 접시만 주지?’

무심코 접시에 손을 댔다가,

‘아야!’

뜨거운 수프가 담긴 접시를 빈 접시로 착각한 것이었다.


짧지만 강렬한,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다.



두 번째 추억은 목동 사거리.

‘숲 속의 빈터’같은 이름의 지하 경양식집이었는데, 상호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목동극장’에서 영구 시리즈 영화를 보고 나오면, 외할아버지가 그 곳으로 데려가 주시곤 했다.


그 시절, 나에게 경양식집의 돈가스나 함박스테이크는 아주 고급 음식이었다.

늘 단정하고 멋스러우셨던 외할아버지에게도,

그 곳은 손녀와 함께 즐기기에 충분히 근사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혼자 스테이크를 즐기시던 멋쟁이셨다.


대학교 때는 한 달에 한번쯤, '언덕 왼쪽의 동화'라는 학교 앞 경양식집에 갔다.

등교길엔 언덕 왼쪽, 하교길엔 오른쪽에 있었던 그 곳.

5500원쯤 하던 돈가스였고, 학식이 질릴 때쯤이면 친구들과 벼르고 별러 가던 곳이었다.


작년인가, 문득 그 분위기가 그리워져 검색을 해봤는데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마음이 허전했다.



사실 그보다 2~3년 전, 20대 초반엔, 바야흐로 ‘일본식 돈가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땐 동네에 일본식 돈가스집이 없어, 일부러 신촌까지 나가야 했다.


깨를 직접 갈아 소스에 섞고, 바삭하게 튀겨 미리 썰려 나온 돈가스를 소스에 찍어 먹던 기억.

왕돈가스에 익숙했던 내게, 그날의 경험은 말 그대로 ‘유레카!’였다.


돈가스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다양하게 쌓여왔다.

일본식도 좋았지만 경양식의 정취도 그만이었다.



남편은 집밥을 즐기고, 나는 맛집 탐방을 좋아한다.

휴대폰에는 ‘지역별 맛집 리스트’까지 있을 정도다.


맛있는 음식도 좋지만, 그 음식이 추억이 되는 게 더 좋다.

그 장소, 그 사람, 그 시간의 분위기를 기억하게 해주는 매개가 되어주니까.



우리 딸이 돈가스 얘기를 꺼낸 건 며칠 전 판교 나들이 때문이다.

그곳에서 먹은 돈가스는 맛은 평범했지만, '88올림픽'컨셉의 레트로한 분위기가 기억에 남았단다.


엄마, 아빠가 빈이보다 어렸을 때 겪었던 올림픽 이야기를 함께 한참을 웃고 떠들던 게 좋았나 보다.



오늘은 원래 집에서 ‘냉털’을 하려 했지만, 남편이 늦는다니 딸과 데이트를 해야겠다. .


5대 영양소를 넣은 ‘엄마표 볶음밥’이 나을까, 아니면 또 하나의 추억이 될 ‘맛집 탐방’이 좋을까.


선택은 아이에게 맡겨야겠다.


어차피 오늘도 추억이 될 테니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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