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토요일엔 김치전이 당긴다
몇 주째, 토요일마다 비가 온다.
빗소리를 들으면 입 안에 절로 침이 고인다.
누군가는 말한다.
“빗소리가 기름 튀는 소리랑 비슷해서, 비 오는 날엔 막걸리와 부침개가 당긴다”고.
그래서일까.
비 오는 날이면 나는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입 안이 촉촉해진다.
겉바속촉으로 잘 구워진 김치전 한 장에, 톡 쏘는 막걸리 한 잔.
그 상상을 하면 더는 참을 수가 없다.
어릴 적, 나는 증조할머니와 살았다.
증조할머니는 장떡을 참 잘 부쳐주셨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셔서 기억은 흐릿하지만
고추장과 된장만 넣은 단조로운 장떡 맛은 아직도 남아 있다.
돌아가시던 날, 증조할머니는
“빈대떡이 먹고 싶다”고 하셨다.
“소화도 안 된다면서 무슨 빈대떡이야?”
그날 그 말은 외할머니의 마음에 깊은 한으로 남았다.
엄마는 김치전 장인이다.
잘 익은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기름 넉넉히 둘러 바삭하게 지져내면,
다이어트 중이던 20대의 나도 젓가락을 멈출 수 없었다.
부추전도, 해물파전도 다 잘 부치셨지만
김치전만큼은 엄마가 최고였다.
“부침개나 부치치.”
아빠의 입버릇이었다.
일을 잘 하면 소가 된다고, 엄마는 늘 손이 바빴다.
신혼 초, 내가 몇 번 음식을 망친 후로
남편은 내게서 부엌을 빼앗아갔다.
살기 위해(?) 유튜브 요리를 파고든 그는
어느새 요리 덕후가 되었고,
각국의 소스며 중식 칼, 특수 도구들이
우리 집 찬장과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그 덕에 우리는 늘 새로운 요리를 먹고 있다.
부침개도 자주 부쳐주지만… 늘 퓨전이다.
입맛엔 맞지만, 내 추억까지는 닿지 않는다.
비가 타닥타닥 내린다.
오늘은 꼭 김치전에 막걸리를 먹어야겠다.
시어머니표 김치를 송송 썰고,
기름 넉넉히 두른 팬에 얇게 지져볼 생각이다.
이번만큼은 남편이 부엌 근처에도 못 오게 할 거다.
내 추억은 내가 사수할 테니까.
그리고 얼마 전 정선 아리랑 시장에서 사온 곤드레 막걸리.
오늘은 그걸 곁들이기로 한다.
토요일이니까.
비가 오니까.
그리고… 오늘은 내가 먹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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