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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글쓰기] 내 이름, 담유

by 담유작가

작가랍시고 거창하게 ‘필명’을 고민했던 건 아니다.

그저 솔직하게 나를 털어놓기 위해선, 약간의 가림막이 필요했다.

본명으로 모든 감정을 꺼내놓기엔, 그 뒤에 올 후폭풍이 두려웠으니까.

이렇게 겁 많은 내가,

20년 가까이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니.

참 묘한 일이다. 어쩌면 그건 나의 ‘페르소나’였는지도.


여러 이름이 후보에 올랐다.

실명을 살짝 변형한 이름, 딸 이름을 비튼 조합…

그러다 떠오른 건 ‘질그릇’ 이미지였다.

소박하고 단단하게, 조용히 ‘담는’ 존재.

‘담’이라는 글자는 꼭 넣고 싶었다.


그래서 나온 이름, 담유.

‘유담’과 ‘담유’ 사이에서 고민도 했지만,

‘유담’이 예쁘다면, ‘담유’는 궁금했고—나와 더 닮아 있었다.

게다가 겹치는 이름도 없을 것 같았다.

진짜, 그렇게 믿었다.


그렇게 ‘담유’라는 이름으로 브런치에 일곱 편의 글을 발행했다.

댓글에 “담유 작가님”이라 불러주는 낯선 호칭도,

어느새 내 정체성을 하나씩 ‘담아가는’ 느낌이 들어 마냥 좋았다.

어제,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담유가 무슨 뜻이야?”

엄마가 물으셨다.

“검색해보니까 북한말이래.”


엥?


검색해봤다.

담유 – 북한어 ‘담수’

그리고 그 아래에 나타난, 뜻밖의 영어사전 결과.


“Damn you.”


…오 마이 갓.

내가 욕설로 필명을 지은 건가?


"이 개새끼야!"

그걸로 작가명을...?

고심 끝에 정한 이름이 이런 뜻을 갖고 있었다니.

창피하고, 어이없고, 뭔가... 웃겼다.


‘지금이라도 바꿔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이름 하나에 이렇게까지 마음이 복잡해질 줄은 몰랐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봤다.

이 이름을 짓던 순간을,

그때 내 마음을.

나는 분명히 ‘내 안의 감정들을 담겠다’는 마음으로 이 이름을 만들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의미로 글을 쓰고 있다.

뜻이야 아무렴 어떤가.

사람들이 어떤 단어로 기억하든,

나는 내 진심으로 이 이름을 채워갈 것이다.


결론은, 괜찮다.


이제 나는 ‘담유’라는 이름에 나의 이야기와 감정을 입혀,

완전히 새로운 고유명사로 만들어갈 거다.


이름이 나를 규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담유’를 만들어가는 중이니까.


담유답게,

오늘도 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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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사람

#작가의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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