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레고랜드
입말 3일차.
어학원에서 아이가 하원하기를 기다리는데, 한 학부모의 손에 가래떡 봉다리가 들려 있었다. 그걸 본 엄마가 말했다.
“저거 하나만 먹었으면 좋겠다.”
이제 3일차인데, 벌써 한식이 그립나 보다.
주변에 떡집이 있는지 검색하니 130미터 거리에 ‘담소’라는 카페가 나왔다. 그 곳에서 떡을 판다고 해서 아이가 하원하자마자 바로 향했다. 가래떡은 이미 다 팔려 없었지만 몇 가지 떡이 남아 있었다. 앙금절편과 인절미를 고르고 아이스아메리카노 두 잔과 아이를 위한 초코푸라푸치노를 함께 주문했다. 한국어로 주문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음식을 기다리며 자리에 앉자 엄마가 속삭이듯 말했다.
“여기 한국 신도시 같아.”.
그 말이 과하지 않았다. 이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한국엄마들로 카페는 인산인해였다. 말레이시아의 신도시마저 한국 어머니들이 접수한 느낌이었다.
쫄깃한 떡에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곁들이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다 먹고 나서도 습관처럼 쟁반을 들고 가져다 놓았더니, 인상 좋은 사장님이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떡으로 점심을 대신했으니 서둘러 그랩을 불러 레고랜드로 향했다. 한국에서 아이와 나는 이미 연간권을 구입해 두었다. 세 번만 가도 연간권이 훨씬 이득이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비자가 없는 외국인은 추가 요금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간 날 때마다 와서 뽕을 뽑아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나왔다.
하원하고 떡까지 먹고 느긋하게 움직이다보니 도착 시간은 4시 35분. 입장 마감은 5시였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밖에서 기다릴 테니 잠깐이라도 들어갔다 오라고 하셨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놀이기구도 타지 않으시는 엄마가 잠깐 사진만 찍고 나오기엔 입장권이 너무 비쌌다.
딸은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이 타야 한다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다행히 놀이기구는 6시까지 탈 수 있었고, 평일 늦은 시간이라 사람도 많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놀이기구는 두 세 번씩 반복해 타며 신나게 뛰어다녔다.
닌자고 어트랙션에서 놀고 나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딸과 나는 잠시 비를 피하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비를 맞으며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유난히 즐거워 보였다. 비는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했고, 덕분에 덥지 않게 놀 수 있었다.
여섯 시가 되어 놀이공원 밖으로 나오니 엄마가 손을 흔들었다. 근처에 빅마트가 보여 자연스럽게 장을 보러 들어갔다. 어제 아울렛에서 가격에 한번 놀란 덕분인지, 마트에서는 이 정도면 저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초콜릿과 과자 몇 개, 시리얼, 아침에 먹을 빵과 잼, 작은 식용유와 우유, 어린이용 치약까지 챙겼다. 우리 돈으로 약 6만원. 제법 넉넉한 장바구니였다.
마트를 나서자 또다시 비가 내렸다. 어쩔 수 없이 마트 안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알리오올리오와 마르게리타 피자 그리고 피쉬 앤 칩스까지 이것저것 주문하고 물도 두 병 샀다. 밥을 먹을 때마다 물을 따로 사야 하는 점은 여전히 번거롭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근성 때문인지, 음식이 나올 때 까지 기다리는 것도 꽤 길게 느껴졌다.
다행히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10점 만점에 10점. 딸은 말레이시아에 와서 먹은 음식 중에 가장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식사를 마치고 그랩을 잡으려는데 또다시 뇌우가 쏟아졌다. 숙소 앞에 도착하자 기사는 여기서 내리라며 차를 세웠다. 보통은 바로 앞에 세워주는데,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었다. 순간 기분이 상했지만, 이 또한 추억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어제보다 조금은 적응한 말레이시아에서의 3일차가 그렇게 지나갔다.